참여학생수기

코어사업단의 국내,해외 인턴 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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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뜨거웠던 여름, 그리고 몬트리올(불문과 4년 김다정)

저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해외인턴십이라는 코어사업단의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 퀘백에 위치한 몬트리올이라는 도시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해외인턴 공고가 뜨기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출국 전 해외인턴이라는 활동과 북미라는 가보지 않은 대륙에 대한 기대감이 꽤나 큰 상태에서 한국을 떠났습니다.

제가 몬트리올에서 두 달 가량 근무한 곳은 Ciné Tapis Rouge 라는 한 영화사였습니다. 위 회사는 캐나다 퀘백 주 몬트리올에 기반을 둔 일종의 작은 기업으로서 퀘백 지방 내에서 제작되는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 힘쓰고, 매년 세계의 수많은 다양한 나라들과 영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Cinévue 라는 소규모의 독립영화제를 이번 여름에 진행하였는데,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전반적으로 준비하고 또 마무리까지 이끌어내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평소 영화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결과물로 접할 수 있는 관점에서만 생각해봤지 그 이전 단계에 대해서는 고찰해 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작 동기라거나, 과정, 감독 및 제작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 등을 가까이에서 직접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또 제가 지금까지 봐온 영화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영화라는 단어를 말할 때 떠올리는 장편의 상업영화들이었는데, 기존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저예산 독립영화와 같은 작품들 많이 접할 기회를 얻은 점 또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영화제는 몬트리올이이 아니라 근교에 위치한 마곡(Magog)의 다양한 장소에서 이루어졌는데, 비가 많이 온 하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야외에서 준비한 영화를 상영했습니다. 그냥 보기에도 훌륭한 작품들을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장소들에서 관람하니 더욱 인상 깊었고, 영화제를 방문한 외국인들과 영화를 보고 의견을 주고받은 그때의 분위기 또한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업무내용에 있어서는 사실 직접적으로 성과를 낼만한 일들을 하지는 않았으나, 총괄책임을 맡고 계시는 Ciné Tapis Rouge의 Vanessa 대표님의 곁에서 여러 일을 팀원들과 역할을 분담하여 처리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영화제를 준비하다 보니 처음엔 모르는 영화 관련 전문용어도 많았고, 영화제 기간에는 며칠 동안 합숙을 해야 해서 편하게 지낼 수는 없었으나 오히려 하루 종일 함께 했던 그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로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이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자연스럽게 불어를 사용했으므로 젊은 층이 사용하는 다양한 표현들을 알게 되어 좋았고, 또 각자의 문화권에 대해 여러 가지 차이점을 비교하는 시간들도 만족스러웠습니다.

떠나기 전에 몬트리올은 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는 캐나다에 있는 도시들 중 나름 크고 유명한 곳, 불어를 쓰는 곳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두 달이 지나고 난 후에는 이런 가벼운 생각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좋은 도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캐나다에 있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어권인 퀘백주에 위치해서 그 외의 영어권 지역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고 또 제 1언어의 본고장인 프랑스와도 전반적으로는 다른 분위기라는 걸 홈스테이를 하며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홈스테이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여러 이야기를 듣고, 프랑스인들도 모를 수 있는 퀘백만의 사투리를 배웠던 시간은 여행객으로 갔다면 알지 못했을 진짜 현지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겨울이 긴 탓에 여름이면 온 도시가 축제로 물드는데, 마침 여름 동안 몬트리올에 짧게나마 살아볼 수 있어서 정말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프랑스 파리가 아닌 퀘백이라 조금 아쉬웠는데 몬트리올은 아주 뜨거웠던 이번 여름, 제게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코어사업단의 해외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여름동안 언어실력의 향상, 앞으로 연락하고 지낼 많은 외국인 친구들, 현지인 입장에서 외국 생활 해보기 등 정말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잊지 못할 최고의 여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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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해외인턴 참가수기(중문과 4년 김형연)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코어사업단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단기 인턴을 다녀온 중어중문학과 13학번 김형연입니다. 제가 인턴으로 다녀온 회사는 MG Playing 이라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처음 회사 이름을 들었을 때 생소한 회사였고 학교와 연결된 회사 리스트를 봤을 때 음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MG Playing의 매장 음악 관리라는 직무가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중문과 전공으로서 항상 중국에서 일하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전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MG Playing이라는 회사는 크게 두 가지 업무를 하는 회사였습니다. 첫 번째는 파리바게트, 스파오 등 중국 전역에 입점 되어 있는 한국 매장들에 배경 음악을 제공해주는 업무를 하고 두 번째는 중국 웹툰 사이트에서 판권을 사서 번역하여 한국이나 태국, 인도 등의 사이트에 웹툰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한국 사이트에서 판권을 사서 번역하여 중국에 제공하는 에이전트를 맡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 회사에 출근했을 때 저는 제가 생각하던 회사의 그림과 너무도 달라 적응하는 데 힘들었습니다. 총 직원은 다섯 명의 소규모 회사였고, 인턴인 저에게는 택배 업무와 같은 잡일만 주로 시키셨습니다. 두 달 일하고 금방 빠질 인턴인지라 중요한 업무를 주시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첫째 주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주가 시작하는 월요일에 저는 팀장님께 일을 달라고 말씀을 드렸고 팀장님은 파리바게트, 스파오, 이태리 식당 등의 매장 음악을 선곡하는 업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나름 처음 받은 임무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매장을 방문한 손님들이 매장을 금방 나가지 않고 손님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심 끝에 내가 손님의 입장이 된 마음으로 열심히 선곡하여 중국 전역의 파리바게트, 스파오에 음악을 보냈습니다.

음악을 듣고 무슨 노래냐고 물어보는 손님들도 많아졌고 매장의 매출에도 조금 보탬이 되었다는 파리바게트의 피드백을 듣고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저에게 믿음이 생기신 사장님과 팀장님은 웹툰 작가와 판권 협상의 다리를 놓는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작가의 연락처를 찾아 리스트를 만들어 작가와 접촉한 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고 함께 일을 해보자고 권유하는 비즈니스였습니다. 사장님이 이러한 비즈니스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중국에서 창업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내수시장 덕분에 괜찮은 사업 아이템 하나만 있으면 중국에서의 사업도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두 달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 값진 경험들을 하였고 회사 업무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좋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였습니다. 다음에 MG Playing이라는 회사에 가시려는 분이 계신다면 저는 적극 추천합니다. 이와 더불어 코어 사업단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 덕분에 2018년 여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코어 사업단 관계자분 들과 담당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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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영문과 3년 조혜원)

2018년 6월 25일, 인생 처음으로 미국에 도착했다.

영어를 정말 오래 배우고, 전공도 영어과이지만, 막상 미국인 앞에 서니 영어가 잘 나오지 않았다. 내 말을 못알아듣는 그들을 보며 주눅이 들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입국심사를 했는데, 인터뷰를 하다가 이민자센터로 이동되었다. 이민자센터에 갇혀있었던 3시간 동안은 다시 한국으로 가야하는 건 아닌지 너무 두려움과 동시에 한국으로 가고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잘 해결이 되면서 (잘 해결된건지는 모르겠지만) 로스앤젤로스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2시간 대기 후 샌디에고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너무 두려웠던 탓에 미국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샌디에고에 도착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

너무나 친절한 사람들과 넓은 바다를 보니 아, 오길 잘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하고 며칠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WorldBeat Center에서 일하고 있었고, 어느새 꽤 익숙해진 나를 볼 수 있었다.

WorldBeat Center는 문화센터인데,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그래서 그 행사들을 홍보하는 역할을 주로 하였고, 행사가 있는 날에는 음식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기전에는 엄청 걱정했었다. 영어를 오랫동안 배웠지만 회화를 해본 경험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는데, 센터의 직원들 모두 너무 친절하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해주었다.

처음에는 질문을 너무 많이하면 그들이 성가실까봐 걱정했는데, 뭐든지 물어보라는 말을 생각하며 궁금한게 생기면 고민않고 물어봤다. 정말 많이 물어봤는데 항상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태도가 그들에겐 좋게 보였는지, 마지막 평가서에 질문하는 자세가 좋았다며 좋은 점수를 받았다.

시간은 흘렀고 그 동안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직원들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센터 직원들 모두 모여 우리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함께 저녁을 먹고 살사 댄스 파티를 구경하기도 했다.

정말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났고,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들 또한 우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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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턴십 참가 수기(영문과 3년 한소영)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수업을 듣고 있던 날, 교수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하셨던 해외인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하루 종일 남았고 고민 없이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에 바로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 해외인턴에 선발이 되었고, 다들 놀 거리가 많고 여행하기 좋은 샌디에고의 회사에 지원할 때 나는 NGO, 이 비정부기구라는 단어에 이끌려 태어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솔트레이크시티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하루가 꼬박 걸려 도착한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에는 집주인 Kathie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나의 미국 생활을 시작되었다. 다음 날에는 Kathie를 따라 앞으로 일하게 될 비영리 난민구호단체(IRC)가서 정식으로 Nolan의 Employment 팀 인턴이 되었다.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의 사용방법에 대해 배웠다. 아직 시차적응도 못한 터라, 내가 맞게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른 채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차츰 IRC에 적응해 갈 때, 북한 난민 피복실씨가 IRC의 새로운 난민으로 들어왔다. 북한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 신기했고, 또 정말 신기했다. 동시에 내가 이 분이 여기서 자립할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나는 그 분의 모든 일을 함께 하였다. IRC와 약속을 잡는 것부터 여러 Orientation 통역까지. 처음에 대부분 통역을 맡아했지만 난생 처음해보는 통역이라 서툴 때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는 영어실력과 함께 통역도 능숙하게 해냈다.

IRC에는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를 포함하여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분은 직원으로서 난민들의 영어교육을 맡았기 때문에 항상 바빴다. 그래서 북한 난민들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직원들이 항상 나를 찾았다. 내가 속해있는 Employment 팀이라는 곳은 난민들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나는 거기에 통역 일까지 맡아서 나의 팀에서 가장 바쁜 인턴이었던 것 같다. 또한 통역을 하면서 IRC의 여러 직원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중에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IRC를 떠나기 이틀 전에는 피복실씨가 미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난민증과 고용카드를 받을 수 있었고, 호텔 매니저 Brett의 도움으로 house attendant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 날까지 은행계좌를 만들고 호텔에 제출하는 것을 끝으로 나의 IRC에서 인턴생활은 마무리 되었다.

사실상 내가 인턴십을 시작하기 전에 이루고자했던 목표들을 모두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 속에는 정말 많은 분들의 감사한 도움들이 함께하였다. 그리고 북한난민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난민들을 만나볼 수 있고, 그들에게 지식을 공유할 수 있으며, 도와줄 수 있음에 행복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인턴생활이 아닌 미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솔트레이크시티는 정말 한적하고 조용한 도시였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 정말 미국스러움을 기대하고 온 나에게는 너무 심심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 곳 사람들은 항상 친절했고 날씨는 항상 맑았으며 거리는 깨끗했던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국으로 선교 사업을 갔다 온 백인친구들을 만나면서 함께 즉흥적으로 라스베가스에 갈 정도로 친해졌다. 미국에서 한국말을 잘 하는 백인친구들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지만 라스베가스에 가서도 한인음식점만 찾을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아마 이 친구들 덕분에 나의 미국생활이 한층 더 재미있어졌던 것 같다. 나중에는 친구들의 소개로 더 많은 미국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쉬웠던 만남이었던 것 같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는 항상 ‘내가 이 친구들을 조금 더 빨리 만났더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에게 주어졌던 두 달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짧았던 만큼 더 애틋했고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말을 정말 잘 했던 미국친구들과 교포친구들. 그리고 나에게 처음으로 한국식 집밥을 만들어 준 IRC의 유일한 한국인 미라언니 그리고 남편 션, 강아지 페페. 나와 함께 Employment 팀에서 일하면서 잘 맞고 나의 이야기에 잘 웃어주던 Stella. 나의 파트너 Olivia. 또 처음 IRC에 와서 우왕좌왕하는 나를 도와 준, 미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된 Chris. 그리고 정말 우리 할머니처럼 나를 dear이라 불러주며 챙겨주셨던 집주인 할머니 Kathie.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이 남아있지만 정말 내가 새로운 문화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나의 미국에서의 삶을 꽉 채워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인 것 같다.

내가 솔트레이크시티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게는 샌디에고와 솔트레이크시티 중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왜 샌디에고에 가지 않았냐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처음에는 내가 샌디에고가 아닌 들어보지도 못한 솔트레이크시티를 선택한 것이 내 인생 최대 실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하게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샌디에고를 선택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백인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조금 더 미국스러운 문화와 느낌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도시의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사과 또한 아끼지 않았다. 항상 예의 바르고, 남을 도와주는데 적극적이었으며 따뜻했던 것 같다. 그 곳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인턴이 끝나고 나서 혼자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면서 정말 그 차이점이 극명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다시 솔트레이크시티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솔트레이크시티에 오기 전의 나는,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으면 경험을 쌓는다는 핑계로 아직 없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이 생겼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도 깨달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이 경험을 발판 삼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면서 체험수기를 끝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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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다는 것(사학과 3년 송연주)

진로에 대한 고민과 더위 속에 힘들어하며 방학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싶지 않아 신청한 해외인턴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회화가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사학과에서 저 혼자가기도 했고 같은 회사에 지원한 학생들을 보니 모두 영문과에 처음 본 친구들이라 출국 전, 새로운 사람들과 해외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요. 프로그램을 마친 지금 저는 이 친구들이 아니었으면 이 곳 생활이 얼마나 무료했을까 싶을 정도로 함께 일하며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며 배웠던 것, 느꼈던 것을 중심으로 적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샌디에고 Worldbeat Cultural Center(이하WBC), Publicity&Marketing부서에서 약8주간 근무하였습니다. 마케팅부서라 하면 거창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소규모 비영리단체이다보니 주 업무는 회사사이트·인스타그램·페이스북등 SNS페이지 관리와 Press Release작성, 이벤트 사이트에 회사 행사 홍보자료보내기가 주 업무였습니다. 앞에서 말했듯 저는 사학과이기 때문에 마케팅 업무가 처음에 낯설었던 것을 사실입니다. 처음엔 SNS 전용 포스터의 개념(사진비율등)도 잘 몰랐고 Press Release를 작성해야하는데 자료조사방식이나 문단구조등이 한국과 달라 초반에 어려움도 겪었고요 하지만 그렇다 고해서 일 자체가 힘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회사 직원들 모두 저희가 실습생임을 인지하고 있고 전문적인 일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업무를 시작하기 전 해야 할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이해하지 못한 경우 질문하면 반복해주기도하고 디자인 관련부분이나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저희가 의견을 제시하면 받아들여주었기 때문에 일이 익숙해지면서 어려운 부분은 없었습니다. 또 디자인을 배운 친구, SNS를 잘 다루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들로부터 서로 도움 받고 배우며 업무에 더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WBC는 Black Culture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원입니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문화이기 때문에 처음엔 음식, 노래, 피우는 향들이 낯설긴 했지만 대표님으로부터 흑인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회사를 다니며 관심이 생겼고 회사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문화원이다 보니 대관 또는 직접호스트가 되어 행사를 진행하는데요. 저희는 행사가 열리면 주로 회사 내외부 카페에서 음식 판매를 담당했습니다. 같이 일한 친구들 모두 알바경험이 많지만 처음엔 손님 응대하는 것도 어렵고 판매하는 제품들이 비건음식이다보니 제품설명에도 어려움을 겪었지만 함께 일하면서 서로 소통에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며 행사를 진행했고 마지막 날엔 직원들이 Cafe girls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저희 마지막 프로젝트였던 국제인턴들을 위한 팸플릿과 비디오제작은 저희가 함께한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물론 비디오제작은 관련 공부를 한 친구가 전담하긴 했지만 제가 팸플릿 제작을 하는데 있어 함께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주고 번역해주고 피드백을 해주어 완성도 높게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8주라는 시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기에 휴무날 함께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샌디에고 내 많은 비치들과 관광지, 식당들 샌디에고 뿐 아니라 가까운 L.A.를 포함해 라스베가스, 애리조나, 샌프란등 함께해 더욱 재밌는 여행이었습니다. 다 광주사람이고 같은 학교에 해외로 와서 일한다는 것 때문에 더 빨리 친해지고 끈끈한 것도 있었지만 함께 다니며 서로의 진로를 포함한 여러 고민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노을보고 했던 시간들 그리고 회사 대표님으로부터 들은 인류애, 사랑, 신념들은 제가 살아가는 데 있어 큰 힘이 되고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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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계 해외인턴 참가수기(언어권: 미국)(중문과 4년 탁유선)

4학년 여름방학,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미국샌디에이고로 인턴을 왔다. 오기로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자격증 준비, 봉사활동 등 나의 경쟁력을 쌓을 수 있을만한 것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 인턴경험이 내게 큰 도움이 될까?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2개월간의 미국생활 이기 때문에 적어도 영어실력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나로 오게 되었다. 중문과인데 중국이 아닌 미국을 신청하게 된 이유는 중국에서의 생활경험이 있기도 했고, 영어 회화실력의 부족과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내 시야를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 일하게 된 곳은 ‘BRAVO TRAVEL’이라는 중국여행사 였다. 인터뷰를 하고 와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들과 손님 모두가 중국인 이였기 때문. 분명 중국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영어를 배우러 왔다는 나의 목적과는 맞지 않았기에 일주일간만 일하기로 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비자신청, 투어관리, 프로그램 다루는 방법 등 여행사와 관련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다음 주부터는 여행사, ‘FIVE STAR TOURS’로의 출근을 시작했다. 회사 크기가 작기도 하고 직원도 4명밖에 되지 않아 많은 걸 배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필요한 걱정이였다. 전화 받기부터 시작해서 손님 응대하기 등 영어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물론 담당 매니저에게 일을 달라고 해서 할 일이 늘어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또한 직무와 관련된 업무를 하게 되어 여행사의 일처리 과정, 직원들 간의 의사소통 방식, 상황대처 방법 등을 몸소 느끼고 체험했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매니저는 우리를 자원봉사자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에 비중 있는 일을 주지 않아서 버리는 시간이 많았다. 이 부분이 너무 아쉬웠던 나는 작은 일이라도 도울 수 있는 것을 알려달라고 적극적으로 행동한 결과, 다른 인턴학생들보다 많은 일을 배워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내어 담당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려는 자세와 의지만 있다면 잘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책임감 있게 맡은 일을 잘해내려고 노력한다면 개인의 발전과 성장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나의 공로를 인정받을 날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Salad Bowl 이라고 부르는 까닭에 대해 새삼 느끼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생각을 나눴다. 이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가짐과 여러 존재들을 포용하려는 태도를 기르게 하였고, 탁유선이라는 개구리를 우물 밖으로 뛰쳐나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으로 돌아가서 공부뿐만 아니라, 계획했던 것들을 잘 실천해 더 나은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느낀다. 인턴 경험 이외에도 여행과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 성장하였기 때문에 정말 후회 없는 여름방학을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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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Love, One People, WorldBeat Cultural...

과연 내가 월드비트센터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샌디에고에서의 내 인턴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인턴으로 가고자 희망하는 기관을 선택할 당시 인스타그램에 월드비트센터를 검색해보고서 깜짝 놀랐다. 클럽 무대 조명에서 흑인들이 랩을 하고 있었고, 신기한 춤을 추고 있었고, 그 무대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즐기고 있는 게시물들이 대다수였다. 내가 생각했던 문화원과 사뭇 다르게 건전하지 않은 분위기에 인턴 생활을 시작하기 바로 전까지도 기관을 변경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선택에 후회란 전혀 없다. 오히려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을 만큼 두 달 동안 많은 걸 배웠고 많은 걸 만났다.

WorldBeat Cultural Center는 음악, 예술, 춤, 교육, 문화를 통해 세상을 치유하면서, 아프리카 및 원주민 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비영리 다문화 예술 단체입니다. 센터에서는 매년 미국의 국경일과 아프리카 주요 행사시기에 맞춰 많은 이벤트들을 개최되는데 유명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레게와 EDM음악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의 전통 퍼포먼스 그리고 민족의 역사를 기리고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행사, 세계의 평화를 희망하는 행사 등 예술과 역사 그리고 문화가 결합된 뜻 깊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의 춤과 드럼을 배울 수 있는 수업들을 개설하였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문화를 배우고 공유하며 하나가 되어가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나는 SNS와 로컬 이벤트 사이트들을 이용해서 센터의 행사와 수업들을 홍보하는 일을 주로 했다. 주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데, 센터 설립자인 마케이다는 월드비트센터 페이지뿐만 아니라 월드비트카페 페이지, 레게 관련 페이지, 라디오 페이지 등 약 20개의 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홍보해야하는 행사와 관련이 있는 페이지에 따로 이벤트 페이지를 만들어서 그곳에 홍보 전단이나 영상을 게시한다. 그리고 수업이 행사 때문에 취소되었다는 공지나 행사의 시간 혹은 행사에 참여하는 아티스트가 추가되었다는 공지도 적절한 페이지에 게시한다. 또한 샌디에고의 행사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로컬 사이트들이 있는데, 이곳에 행사를 등록하는 것도 업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홍보나 마케팅 관련 업무 뿐 아니라, 센터로 문의되는 보이스메일이나 SNS 메시지들을 관리하고, 여름에 열리는 Children Summer Camp의 지원서와 참가비를 관리하는 일과 같은 사무적인 일도 한다. 그리고 작은 홍보 전단지를 만든다던지 센터 내에 존재하는 갤러리 작품의 이름표를 디자인한다던지 센터 외부에 있는 정원과 관련된 잡지를 만든다던지, 영상을 만든다던지 미디어들을 이용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일도 주어진다. 마지막으로 센터에 행사가 있을 때면 내부와 외부의 카페에서 음식과 음료를 파는 고객응대도 하게 된다. 한 부서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일들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또한 학교, 교실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실무들을 배울 수 있었던 점과 외국에 나와서 서툰 영어로나마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본 것 또한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인턴 생활을 하면서 몹시 행복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곳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과 여러 문화들 때문이다. 센터의 설립자 마케이다는 항상 우리를 마주칠 때마다 그 분이 76년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그리고 23년간 센터를 운영해오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들을 전해주시곤 했다. 문화들이 합쳐지면 곧 세계가 되듯이 문화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고 우리의 문화와 뿌리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고 하셨고,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자 센터 한 편에 있는 공터를 일구어 아이들을 위한 정원을 만들었고, 지금은 도심에 익숙해 자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정원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마케이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한국에 돌아가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되새길 것 같다. 항상 우리에게 더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하고 더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곳 스태프들의 마음과 내 손으로 두들겨 보았던 아프리카 전통 드럼과 내 눈으로 직접 봤던 원주민들의 문화들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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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rself(영어영문학과 3년 반채원)

처음 코어사업단의 인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을 때는 막연하게 해외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면접을 통과하면서 인턴을 가게 되었다고 확정이 되니, 영어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 부랴부랴 정신없이 미국에 왔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으로 온 바로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San Diego에 있는 WorldBeat Cultural Center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WorldBeat Cultural Center를 한 단어로 ‘아프리카 문화원’이라고 칭할 수 있으나, 그 기관이 하는 일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요일마다 다른 수업들이 열리며, 레게 가수들을 초청한 행사도 많이 열리고, children camp나 아프리카뿐만 아닌 일본이나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 곳은 vegan 음식을 파는 cafe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곳에서 홍보 역할을 하며 메일확인, 이벤트 홍보하기, 홈페이지 관리, 팜플렛 제작 및 동영상 제작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였습니다. 또한 이벤트들이 열리면 카페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팔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저도 경영이나 홍보와 관련된 과도 아니고, 컴퓨터를 잘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을지 굉장히 걱정하기도 하였지만, 우리의 manager가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 주어서 해 낼 수 있었습니다. :)

WBC에는 여러 명의 staff들이 있는데, 그들 또한 항상 웃으며 가족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엄중했던 Blaboa Park 총 director meeting도 구경해보고, 여러 artist도 만나보고,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던 WorldBeat Culture는 기관 이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문화를 잃지 말고 너의 힘을 믿으라던 총책임자인 Makeda의 말이 떠오릅니다.

틈틈이 했던 샌디에고의 여행 속 풍경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고,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멋진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를 통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vegan음식 체험기, 아주 값싼 소고기,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는 수많은 강아지들, 길을 건널 때면 저 멀리서 멈춰주는 자동차들, 많은 인종들 등 소소하게 이곳의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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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의 인턴기록-상해성부실업(중문과 4년 박가영)

지난 6월부터 8월 초까지 약 두 달간 상해성부실업(上海星夫实业有限公司)에서 인턴 생활을 하였습니다. 상해성부실업은 신선식품을 유통 및 판매하는 회사이며 현재 상해 링콩(凌空)에 1호 매장 CHEFOOD를 시작으로 가맹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곳의 가맹사업부에서 일하며 6월에는 두 번의 가맹전시회에 참여하였고 7월부터는 가맹사업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회사에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준비하는 것부터 전시가 끝날때까지 힘이 들기는 했지만 덕분에 회사에 대해 일찍 파악하게 되었고 매장 직원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중국에 갔을 때에는 짧게 여행을 가거나 학교를 통해서 교환학생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방을 구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인턴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직접 방을 구해야했습니다. 미리 한국에서 여러 어플을 통해 방을 보았는데 중국 현지 번호가 없으면 중개인이나 방주인과 연락을 할 수가 없어서 임시 숙소를 잡아두고 상해에 갔습니다. 다행히 좋은 중개인을 만나 하루만에 방을 구하게 되었고 주숙등기까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겁이 많아 혼자 지내기가 무섭기도 하고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집을 구하려다 보니 집세가 너무 비싸기도 해서 방은 각자 사용하고 주방, 거실,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하는 쉐어하우스에 입주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화장실을 사용하는 데에 약간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쓰촨성, 하얼빈, 시안 등 여러 곳에서 모인 중국인 언니들과 친해져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상해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상해는 한국에서 약 2시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기도 하고 문화적으로도 비슷한 점이 있어서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한식이나 한국 물건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상해에 가기 전 작년 여름에 기온이 40도까지 오를정도로 매우 더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을 했지만 올해는 다행히 많이 덥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습도가 매우 높아서 생활하기에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6월 초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공기가 좋지 않았지만 6월 말부터 때때로 태풍이 오는 바람에 돌아올 때까지 맑은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물가는 대체적으로 한국과 비슷하지만 월세는 비싼 편이고 지하철은 3~4위안 정도로 저렴합니다. 상해는 출퇴근 시간 혹은 평소에도 차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라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좋은데 공유자전거가 생활화되어 있어서 초기에 등록을 해두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도 많고 차도 많기 때문에 조금 위험할 수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배달 시스템과 QR코드가 잘 되어 있어서 생활하는 데에 편리한 점이 많습니다.

이번 인턴생활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그리고 생활하는 면에서도 제가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두 달이라는 어떻게 보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지만 회사와 상해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방학 때 해외 인턴쉽에 참여한 것은 제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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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하계 영어권 해외인턴 참가 수기(영문과 3년 최지은)

코어 사업단에서 추진된 영어권 해외인턴에 참가해 San Diego에 있는 TESOL TRAINING CENTER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TESOL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다양한 국적을 가진 다양한 인종들을 만나며 여러 문화권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도 흥미로웠습니다. 서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 서툴지만 서로 서툰 것을 알기에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의사소통을 했고, 친한 인간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이러한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측면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관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다루고, TESOL과 TOEFL에 관련된 서류 작성을 하며 학생들을 돕고, 엑셀 파일을 이용해 여러가지 문서 작성을 하는 방법 등 실용적인 방법을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가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옆에서 차근차근 설명해주며 도와주시는 분들이 결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힘든 적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외국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물어볼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 이번 해외 인턴이 저에게는 너무도 갚진 것 같습니다.

같은 영어를 배우는 입장에서도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영어로 항상 대화를 하려고 하는 모습에 제 스스로도 자극을 받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지며 조금씩 배웠던 그들의 모국어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어 영어 뿐만 아니라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싶은 열정 또한 생겼습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 또한 가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제 스스로가 느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다음에도 해외 인턴을 가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꼭 신청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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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사업 해외인턴(미국) 참가수기(불문과 4년 박은서)

8주간의 인턴생활을 통해 생각보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기관에 배정되기 전에 작은 규모이고 interglobal이라는 기관과 연계되어 계속 한국인 인턴이 정기적으로 오는 기관들이 많기 때문에 직원들의 태도에 처음에는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한 8주라는 짧은 기간만 일하기 때문에 굵직한 일들은 많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개인에게 매일 정확히 주어지는 일이 적고 인턴은 많다 보니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아주 작은 일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또한 필요한 일이고 제가 임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 따라 기관 직원들과의 관계와 남은 기간의 추억이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관의 직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직장에서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기관의 다른 학생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지난 1학기에 실용비즈니스영어라는 강의를 수강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있는 기간 동안 새로운 선생님을 구해야 했는데 그 때 다양한 레쥬메resume와 커버레터 그리고 면접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지난 학기 배웠던 내용들을 통해 해외에서 취업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더욱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 시작 전에 영어회화, 해외취업 관련 강의 또는 개인이 미리 준비해서 온다면 아는 만큼 더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저의 진로와 관련된 기관에서 일하며 진로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때 큰 영향을 끼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하면 긴 8주 동안 미국의 직장생활과 문화를 배우고 여행할 수 있었고

샌디에고라는 좋은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신청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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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일어일문학과 3년 손아연)

일어일문학과지만, 학교를 다니던 2학년 까지는 학과에 관심도 없었고 일본어를 배우는 것에 별로 흥미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 지도 모르는 채로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가 이왕 이 학과에 오게 된 만큼, 그래도 졸업하기 전까지는 현지인들과 막힘없이 대화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보자 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조교선생님으로부터 장기 인턴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프로그램을 하기위해 일본인 선생님도 소개받아 친구 2명과 모여서 스터디그룹같이 매주 2-3번씩 모여서 일본인 선생님과 같이 회화연습, 듣기연습도 하고 단어도 외우고 작문도 써보는 등 일본어 수업같은 모임을 하게 되면서 점차 일본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부족한 점이 있었는지 1차 면접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2차 면접도 그 후 있었지만, 2차 면접은 일본에 가서 2달 후에 다시 볼 수 있는 상황이였고, 일본에 간다고 해서 내가 붙을 수 있다는 장담은 없었다. 그래도 일본에 가기로 결심한 이상 무섭고 불안하더라도 일본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이간 학교를 다니면서는 수업시간동안은 전부 일본어로 수업하기 때문에 정말 기초가 부족했던 나는 처음엔 한자를 잘 읽을 지도 몰라서 애를 먹었다. 또한 같이 온 친구들 중에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걸 생활하면서 많이 느껴서 일본드라마도 찾아서 보고, 기숙사에 있는 TV로 무슨 말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자막 없이 보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배운 단어들도 외우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달 후에 있을 면접을 위해 학교 선생님들과 매주 3일씩 면접연습도 하면서 점점 말하는 거에 대한 자신감도 늘게 되었다. 2달 후, 드디어 2차 면접에서 붙게 되었고 면접연습을 하는 동안 먼저 일을 하고 있던 친구들을 부럽게 바라보던 나는 면접에 붙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 일하러 가던 날, 머릿속으로 계속 상상하고 연습하던 말들이 실제가 되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진짜 책으로 하는 공부와 몸으로 배우는 공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수업시간에 배운 단어들이나 문장들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말이 나오질 않으니 진짜 내 스스로가 답답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들 익숙한 듯 일을 하지만 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한 내가 직원들에게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직원들은 없었고, 직원들과 친해져서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같이 만나서 얘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그런 것들을 상상했던 나에게는 이런 점들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 온 이상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하는 건 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직원들에게 한가한 시간에는 말을 걸기도 하고 궁금한 점도 물어보기도 하면서 일단 부딪혀 보자라는 식으로 다가가기로 했다. 아직 일을 시작한지 2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직원들과 엄청 친하진 않지만 처음보다는 가까워 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만나서 하는 말은 일과 관련된 주제이고 한정돼있기 때문에 회화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본어친구를 사귀어서 계속 일본어로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일본어 친구를 많이 사귀려고 하고 있다. 다음 주에 드디어 일본인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 만나기 때문에 걱정되기도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친구도 사귀고 일본어도 늘고 싶다. 그리고 이 인턴 프로그램을 오기 전에 작지만 내 목표가 있었는데 하나는 일본어 회화를 늘리기였고, 또 하나는 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내 성격을 바꿔보자 였다. 아직 이렇다 저렇다 할 뚜렷한 성과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일본인친구도 사귀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접해보고 말해보고 싶다. 그리고 일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느끼는 점도 참 많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일본에 와서 공부하는 게 확실히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쉽게 느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일본에서 생활 할 시간도 반년밖에 남지 않았으니 더 많은 걸 경험하기 위해 내가 직접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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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번 해보자(일어일문학과 3년 노은지)

일본에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던 이유는 ‘일단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 오기 전 한국에서는 인턴프로그램에 참여를 할지 계속 고민하고 고민했었습니다. 참여를 안 하면 한국에서 이도저도 안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고 졸업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한 번 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인턴프로그램을 신청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일본에 살아보고 싶었고 일어일문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도 일본이 좋았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상통화로 본 면접에서 떨어졌고 더 크게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일본에서 죽어라 노력하면 재면접에는 붙겠지 라는 생각을 하였고 일본으로 가자고 결정을 하였습니다.

일본에 오고 나서 첫 일주일은 주민 등록, 보험, 은행계좌 만들기, 핸드폰 개통하기 등으로 바쁘게 시간이 지나가버렸고 일본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던 시간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웠고 수면시간도 많았기 때문에 학교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면접에서 다행히도 붙어서 일을 하게 되었고 더 싼 곳인 호텔 기숙사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기숙사는 싸고 1인실이라 좋았지만 학교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학교와 왕복 2시간이 걸렸습니다. 학교와 일을 병행하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지각과 결석이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최소한의 출석률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분단이 따로 나누어져 있어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먼저 용기를 내서 친해지자고 말을 걸었고 지금은 친해지고 있는 중입니다. 외국인들끼리 서로 일본어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문법이나 단어가 맞는지 틀렸는지 잘 모르고 사용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라도 얘기를 해보자 해서 지금은 외국인들과의 대화를 위해서라도 영어도 짬짬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모두 착한 외국인들이기 때문에 영어 문법이 틀린 것은 다 고쳐주고 천천히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학교, 일 그리고 한국인 친구들과 다니기만 하면 일본어는 하나도 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외국인 사귀는 어플을 이용해서 일본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친구와 놀면서 밥 먹으러 갔던 한국요리점에서 한국 좋아하는 다른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 지금은 일본인 친구도 한 두명씩 늘어 일본어로 얘기도 하고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조금 아쉬운 것은, 학교와 일에 집중하다 보니 일본어 회화를 많이 못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할 수 없어 잊어버리게 되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프로그램 목적은 일이지만 일보다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 외국인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 더 많이 배우게 되고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일에서는 말을 하는 것 보다는 특정한 말만 듣게 되고 언제는 말을 하지 않고 일만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무엇을 얻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본 직장의 시스템을 알게 되었고 한국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평일에는 오전에 일본어 학교를 다니고 있고 오후에는 일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여러 사람을 만나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눈치 보며 할 수 없었던 일을 이곳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해볼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광주에서 외국인을 찾기에는 어렵지만 이 곳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어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알 수 있고 새로운 문화에 충격도 받으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지만 최종목표인 일본어 마스터에 한 발자국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일본어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Give it a try'라는 것을 생각하며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시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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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인턴쉽(일문과 3년 이은지)

일본으로 인턴쉽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은지 어느덧 8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현지에서 일본어를 배운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쌓여 있었던 것 가습니다. 일본에 와서 오전에는 학교를 다니고 오후에는 일을 다니며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학교 생활과 일을 함께 병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면접에 합격하게 되면 호텔과 일하는 곳을배정 받게 됩니다. 각 곳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제가 배정받은 곳은 서로서로 잘 알고 분 위기가 좋은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먼저 일하고 있던 선배와 동기에게 일을 배우고 일본인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분위기를 익혀 갔습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해외에서 처음 일하는 것이다 보니 초반에는 긴장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일에 익숙해져 이제는 어느정도 감이 잡혔습니다.

일을 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는 사실상 한정적입니다. 따라서 일본어가 늘고 싶다면 일본인 직원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원들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먼저 사적인 대화를 걸어오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일본어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일본인 직원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일터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 있다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언어학습 어플을 통해 한국에 관심이 있는 일본 친구들을 사겼습니다. 그들과 라인 아이디를 주고 받아 대화를 하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은 실제로 만나서 식사도 하고 이것 저것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실상 한국에 있으면 일본인들과 이렇게 직접 만나 대화할 기회가 적으므로 일본에 있을 때 여러 가지 것들을 잘 활용해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면 우리 또래의 현지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를 알 수도 있고 서로 대화를 이어가기 때문에 회화 실력이 더욱 더 빨리 향상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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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외인턴 참가수기(일문과 3년 김은서)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늦게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많이 앞섰습니다. 일본어도 아직 많이 서툴고 실수를 하진 않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여기는 일본이고 손님들은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에 들리는 것은 전부 일본어였습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무언가를 물을 때, 의미를 몰라 실수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학교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니, 손님들의 대부분의 말을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10에 7은 직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해결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일본어도 일본어지만 일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온 몸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니 많이 적응이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본인 친구들과도 친해져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니,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는 또 다른 공부가 되었습니다. 언어공부는 직접 현지에서 현지인과 회하를 통해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인해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으며, 미래 취직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언어에 자신감도 없고, 회하가 부족한 학생이 있다면 인턴십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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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권 해외 인턴십 참가 수기(일문과 3년 정희준)

저는 이번 인턴십에 참가하기 전까지 해외에 나가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일본어를 전공하고 있으니 언젠가 일본에는 가 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품은 채, 실제로 여행을 하려고 마음먹다가도 비용이나 언어에 대한 걱정으로 금세 포기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졸업하고 취업한 후에 가도 늦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전 학기에 그런 생각이 바뀌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에 인턴십이나 어학 연수를 다녀온 학생들과 같은 강의를 듣게 되었던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일본어 억양과 발음을 구사하는 그 학생들을 보니, 역시 일본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일본어 학습에 굉장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한 번쯤은 일본에서 생활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섰고, 주저없이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인턴 실습을 시작하기 전, 일본에서의 생활은 즐거운 일 투성이였습니다. 해외 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어디서든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하고, 덤으로 어느 가게에 가든 종업원이 친절하게 대해주니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습니다. 일본인은 친절하다는 인식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니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친절함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인턴십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메랑으로 제게 돌아왔습니다. 처음엔 직접 손님을 상대할 일이 많지 않았기에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점차 손님을 직접 상대해야 할 상황이 많아지면서 신경써야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올바른 경어의 사용법은 물론이거니와 서 있는 자세를 비롯해, 자리에 앉은 손님에게 압박감을 주지 않도록 주문을 받는 종업원과 요리를 내는 종업원의 위치 관계까지 세세하게 지정하는 매니저의 주문을 들으니 거의 질리기 일보 직전의 느낌이었습니다. 돈을 지불할 때에는 일본인의 친절이 그저 반가울 따름이지만, 직접 돈을 받으며 일본인의 친절을 흉내내려 하니 그처럼 힘든 일이 따로 없었습니다.

인턴십을 시작한 지 두 달도 넘은 이제는 저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불가해한 일본식 친절함이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는 것 역시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호텔에서의 인턴십은 다른 곳의 인턴십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직장보다도 친절을 강조하는 곳이 바로 호텔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남은 몇 개월의 인턴십을 마치고 나면 일본인의 행동과 그 안에 숨겨진 의미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일본어 회화와 일본어 경어 능력의 향상은 그에 비하면 어쩌면 별 것 아닌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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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턴십 활동 참가수기(일문과 3년 배채연)

인턴십 활동을 하기 전부터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라는 외국어를 사용하여 직원들, 손님들과 원활하게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 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턴십 활동을 마음먹기 전, 인턴십 활동이 확정 된 후에도 몇 번이고 고민하고 걱정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깝고 생활 문화가 비슷한 나라라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주거 공간, 생활방식, 대화방식, 생각하는 방식까지 다른 점이 많습니다. 아직도 완전히 생활에 적응했다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초반에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본어를 전공으로 하고 있어 회화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수업 때 표준어로 형식적인 문형을 배웠던 것과 달리 인턴십 활동을 하고 있는 오사카는 말도 굉장히 빠르고, 사투리도 사용하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빠르게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같은 것을 말하더라도 사람마다 단어 선택이 다른 데, 이런 일상적인 단어는 수업 때 배웠던 내용을 활용하는 것 보다 일본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상기시키며 이해하는 게 훨씬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문형이 기초적인 문장을 만들고 회화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만 형식적인 것만 배운 상태로 일본의 일상 속에서 완벽히 원활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말투, 말하는 방식 등 수업 시간 때 배우지 않은,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턴십 활동은 저희를 담당해 주시는 분이 처음부터 차근차근, 천천히,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주시기 때문에 일을 배우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일하는 곳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제가 일하는 곳은 중화 코스요리 레스토랑이다 보니 외워야 할 것도 많고, 손님과 경어를 써서 대화를 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아직도 일이 쉽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이라고 해서 일을 하는 데에 더 신경을 써주고 잘 대해 주겠지 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시간이 있으면 일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만, 제가 혼자서 손님의 주문을 듣고 해내거나, 손님들이 웃으며 답변을 해줄 때 등 어렵고 힘든 점만 있는 게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있는 때도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면 그 외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잠깐이라도 생활을 해보거나 일을 해보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만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처음엔 너무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 힘든 일 속에서도 보람을 찾았고, 즐겁게 해나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데에는 즐겁고 편한 점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너무 어렵고 힘들 상황들만 생각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턴십 활동은 본인에게 있어 자국에서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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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큐인터네셔널 나이트&데이에서의 인턴생활(지질환경전공 4년 차혜민)

저는 현재 일어일문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는 지구환경과학부 지질환경전공 4학년 차혜민 이라고 합니다. 현재, 2018년 4월을 시작으로 2019년 2월까지의 기간으로 일본 오사카 한큐인터네셔널 나이트&데이 레스토랑에서 인턴쉽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인턴쉽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 건 작년 1학기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준비를 한 시기는 11월에 일본어 학교 원서를 넣고, 2월 호텔 면접날까지 예로 제시된 질문에 답을 작성하여 준비를 하였고, 합격 통보가 와서 3월 26일 오사카에 입국, 4월 4일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우선, 평일 오전에는 세이간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고, 오후에 호텔에 근무를 하러가는 형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일은 17시 이후에 시작, 주말은 시간 관계없이 시프트에 나온 시간에 출근을 하여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4월 시프트는 호텔 측에서 짜주셨고, 5월부터 직접 작성하여 제출하면 그것을 토대로 캡틴께서 짜주십니다. 해외 입턴쉽 프로그램으로 참가하여 인턴쉽 진행을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어 실력을 늘리고,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오전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근무는 일주일에 28시간 제한을 두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게 된 호텔은 한큐 인터네셔널로 5성급 호텔이라는 중압감에 시작하기 전에 부담감을 갖고 들어갔습니다. 타과였던 저는 일어일문학과 학생들에 비해 일본어 실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서비스 아르바이트를 1도 해보지 않았던 저로써는 어떻게 손님들을 대할 것이며,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어도 아닌 일본어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초심자에게 필수품인 볼펜과 메모장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선배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하였습니다. 안내와 사게모노(홀의 접시를 정리하는 일), 드링크코너 담당은 물론, 커플플랜 하나포라(작은 꽃다발을 전달해드리는 일), 논 알콜 드링크 판매, 레스토랑 맞은편에 있는 테이크 아웃코너(빵과 케이크를 파내하는 곳)의 앞에서 요비코미(손님들을 불러 모으는 일)등 정말 생각 했던 것보다 다양한 일을 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드링크 코너의 담당을 맡아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 직원 분 두 분께 차례로 혼이 났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 난지 모르는 상황에서 두 사람한테서 연속으로 혼이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고, 눈물이 나올 뻔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전까지 즐겁게 일하고 있던 저는 눈물을 참고 일을 하였습니다. 후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듣고 나서야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겪으며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해나가며 느낀 것은 일본인은 친절하다. 느긋하다(여유롭다), 생각보가 한국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은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저는 앞으로 인턴쉽이 끝난 다음 한국에 돌아가면 학교를 다니며 취직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기회가 된다면 일본에서도 취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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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해외인턴 참가 수기(일문과 3년 백지연)

일본에 처음 왔을 때는 이제 약 1년을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호텔 레스토랑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친구들과 놀러 가서 맛있는 걸 먹거나 다 같이 모여서 밥을 해 먹는 것도 즐거웠다. 한국에서도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어서 일본에서 일한다는 것에 걱정도 많이 했지만 잘 적응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을 배정받고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해외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뷔페 레스토랑이라 같은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들, 조리사분들과 일본어로 대화할 일이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입이 트이지 않아서 힘들었다. 당연하지만 일본어로 일에 대해 배우고 일본어로 대화하고, 손님을 안내할 때나 질문에 대답할 때도 일본어로 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본어로 말할 기회라고는 전공 수업시간에 잠깐 하는 게 다였기 때문에, 일본어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해서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뷔페 레스토랑이라 손님들이 많이 와서 바쁘고 음식을 내가거나 접시를 치우는 등 할 일이 많아서 몸도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연속으로 일을 나가는 날이 많았던 두 달째 달에는 고등학생 때 이후로 나지 않았던 코피가 두 번이나 났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하지만 점점 내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나고,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자 일을 시작한 이후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이나, 탈의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해 주는 호텔 직원들의 미소 같은 것들이었다. 몸이 지치고 피곤해서 힘들 때도, 고맙다고 웃어주는 손님들 덕분에 힘이 났고 이제 일이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며 격려해 주는 직원들의 말에 자신감도 생겼다. 일을 하면서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실수하면 안 되고, 알아서 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나를 너무 몰아붙였던 것 같다.

 

나는 제일 중요한 건 기본적인 일본어 회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레스토랑 일이 바쁘기 때문에, 직원들이나 손님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대화가 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내 상황이나 의견을 전달하기도 어려워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다. 물론 일본어에 자신이 없어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귀와 입이 트여서 일본어 실력이 많이 향상된다.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일을 한다는 게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 해외에 나와 현지인들과 소통하고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힘들고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해외에 나와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만약 인턴십 활동을 지원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지원할 것 같다. 아직 인턴십 기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일본의 다른 지역에도 놀러 가보고,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먹으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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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그리고 도전(일문과 3년 김채린)

인문대학의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학년 5월쯤 이었다. 단기프로그램으로, 9박 10일의 일정이었다. 2학년 초까지만 해도 학과공부에 관심도 없었고 꿈도 없었고 적당히대학에 다니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생각이었던 나는 전액 지원으로 일본에 갈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막연하게 일본에 왔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수능만을 바라보며 대학진학을 준비했던 나는 수능에서 실패를 맛봤고 생각지도 못한 과에 오게 됐었다. 수능이 끝나고 경험삼아 3박 4일로 갔었던 일본여행은 내게 실망감만 안겨줬다. 그도 그럴게 일본어는 그 전까지 제대로 배운 적도 없었고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는 일본에 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학교에 입학했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단숨에 바꿔주었던 경험이 9박 10일의 단기인턴 프로그램이었다. 오전에는 어학교에 가고 오후에는 관광이나 일본회사나 호텔을 방문하여 회사의 경영방침, 인턴제도에 대해 배웠다.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기본적인 일본어회화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기인턴에서 만났던 많은 친절한 일본인들의 말을 이해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지금까지 내가 일어일문학과에 들어와서 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대학진학은 실패였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현실을 외면해왔던 것이다.

이왕 이렇게 일어일문학과에 들어온 만큼 일본어만큼은 완벽하게 해야 되지 않겠나 싶었고 2학년 2학기 때부터 일본에서 생활하기 위해 최소한의 일본어 실력을 갖추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일본인 선생님을 소개받고 끊임없이 대화해보려고 했으며 일본어를 잘하고자 하니 전공과목의 공부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전공과목이였던 일본의 종교문화, 역사문화, 영상문화도 즐겁게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덩달아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도 올랐다.

그렇게 인턴 인터뷰에서 한번에 합격하게 됐고 일본에 와서 일하게 됐을 때 또 다시 나의 일본생활에 대한 이상이 깨졌다. 오사카 지역은 특유의 오사카 사투리를 쓰기 때문에 처음에는 매니저님과 직원들이 하는 말씀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서 정말 힘들었다. 애초에 뷔페일이 쉽지 않은 일인데 가르쳐주시는 말씀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매일 실수하고 사과하고의 연속이었다. 신기하게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자 안 들리던 말들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고, 일본인 직원들에게 말을 먼저 걸어보자 하는 용기도 생겼다. 물론 어떠한 노력도 없이 하루아침에 안 들리던 일본어가 잘 들리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한달 간은 같이 일을 시작한 학생들 중 내가 제일 일본어를 못한다는 조바심에 매일매일 일본드라마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자막없이 티비도 보고 했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일본생활에 너무 익숙해져서 똑같은 사람만 만나고 같은 길만 지나고, 이상의 일본생활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일본에 오기 전에 내 이상은 이게 아니었는데, 일본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일본의 문화도 많이 접하고,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는데, 어느새 익숙해져서 내가 원했던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나의 일본생활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에 두려움이 앞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것이 두렵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어학원만 해도 세계각국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새로운 언어를 접할 수 있고 시도할수 있다. 하지만 놀림받을까 두려워서, 차별당할까봐 담을 쌓고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뼈져리게 느꼈다. 내가 해외인턴프로그램을 경험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 일본에도 오지 못했을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찾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일본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도중에 영어 회화에 대한 공부도 꼭 할 것이다. 나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도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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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서의 해외인턴 경험(일문과 3년 최현정)

해외에서 인턴 활동을 하려고 결정하게 된 것은 먼저 해외인턴을 하고 있던 선배들과 동기들의 덕분이었다. 일본어 공부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더 공부하고 싶은 상황에서 선배, 동기의 조언으로 해외인턴을 결정하게 되었다. 아직 일본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고 몇 달간 면접 준비에 전념했다. 다행히도 합격을 하게 되어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근무하게 된 곳은 오사카의 호텔 중 한 곳의 프론트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본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프론트에 배정받아 걱정을 많이 했다. 처음 근무하게 된 날, 생소한 일본 근무 시스템과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경어 사용,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로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실수도 많이 하고 배워야 하는 업무도 많았지만 주변 직원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배려해 준 덕분에 나중에는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이번 인턴 활동은 즐거웠던 일도 많았지만 힘들었던 일도 많았다. 그렇지만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귀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일본에서 직접 생활하고 일본인들과 같이 일을 했기에 일본의 문화와 그들의 정서가 더욱 더 피부에 와 닿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나는 자국민이 아니라 그들에게 있어 외국인이었기에 좀 더 특별한 시선으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해외 인턴 활동을 통해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남긴 것 같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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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외인턴 참가수기(일문과 3년 김서연)

출국 전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나서, 지원금 지원서를 작성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계기나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등을 적어서 냈다. 그리고 일본어학교의 입학절차를 밟아, 수업료를 납부하거나 유학 비자를 발급받았다. 유학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광주에서 발급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비자가 나오려면 하루는 걸리기 때문에 서울에서 숙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여행사에 비자 대행을 맡길 수도 있지만 돈이 꽤나 든다.

일본에 가기 전에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보험을 가입해야 했는데, 보험은 최대한 싸고 정확히 1년 정도만 가입이 가능한 것으로 찾아보았다. 유학생보험이 따로 없는 경우에는 장기 여행자보험에 가입하는 듯싶어 한화 다이렉트 장기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였다.

그 후, 지원금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담당 교수님과의 면접이 있었다. 자기소개와 지원 계기를 일본어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월 달 쯤에 인턴십을 하기로 배정 받은 한큐 한신 계열 호텔의 인사부 사람과의 일본어로의 면접이 있었다. 지원한 이유, 일본에 온 적 있는지, 가족 관계를 물으며 일본 유학을 반대하시진 않았는지 등에 관한 내용을 물어보셨다. 그 후 합격결과가 나오고 일본행이 결정 되었다.

 

출국 그리고 입국

출국 날은 광주에서 부산가는 아침 첫 고속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김포공항에서 에어부산을 타고 오사카로 갔다. 부모님께서 EMS를 따로 보내시는 법도 잘 모르시고, EMS의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을 알기에 오사카가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옷을 전부 챙겨가기 위해 28인치 캐리어를 가져갔다. 28인치 캐리어인 만큼 무게가 많이 나가 초과수화물에 걸려 추가금액을 내야했다.

일본 오사카 칸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절차를 밟을 때, 재류카드를 발급받았다. 재류카드에 관한 설명과 함께 유학비자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28시간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JR을 타고 나가이에 향했다.

 

입국 후

입국 후에는 살 동네의 구약소를 가서 주민등록을 해야 했다. 어학교의 한국인 선생님께서 함께 가서 도와주셨다. 구약소에 기본 사람이 많았던 것도 있었지만, 함께 입국한 유학생들이 다 같이 가서 그런지 구약소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민등록과 함께 국민건강보험을 신청해야했다. 그리고 은행을 가서 월급을 받을 통장을 만드는데, 한국에서처럼 체크카드가 아닌 현금을 뽑아서 쓸 수 있는 캐쉬카드를 받았다. 일본은 현금을 많이 쓰고, 물가가 좀 비싼 부분도 있기 때문에 만 엔씩 뽑아서 써도 금방 없어져서 매번 은행에 가서 뽑아 쓰는 점이 좀 귀찮긴 하다.

호텔 기숙사를 이용하기 전까지는 학교 기숙사를 썼다. 학교 기숙사에서는 동기 친구들과 함께 좌충우돌로 생활할 수 있어, 공동생활이라는 불편한 점을 빼고서는 평소 친하지 않았던 동기들과 친해지고, 다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어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현재

현재는 인턴을 시작한지 3개월 이상이 되었고, 경어에 전에 비해 익숙해져있었다. 비슷한 말만 사용해서 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원들과의 이야기와 손님들과의 대화가 있다 보니 청해와 회화가 늘어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재는 일본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학교와 호텔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 늦게 들어오는 힘듦이 있지만 들어오는 월급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나름대로 일본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남은 개월들도 많은 일본 문화를 즐기고, 일본 생활을 보내고 귀국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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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외인턴(일문과 4년 김현석)

외국여행도 쉽사리 갈 수 없는 요즘, 이렇게 일본 현지에서 직업 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해주신 인턴 프로그램 관계자 여러분께 먼저 감사 말씀 드립니다. 일본에서의 생활, 직업 환경 등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좋았지만, 일본인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여러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값졌습니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과 실제 일본의 모습이 일치하는지 예전부터 많이 궁금했기에 20대부터 50대 이상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했습니다. 역사 인식을 시작으로 현재의 인식, 그리고 앞으로의 관계... K-POP과 한류 드라마는 과연 일본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으며, 한일 양국은 친하게 지내야한다는 인식은 의견의 차가 적었지만, 역시 역사 인식의 차이가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역사 교육이 중시되는 한국에 비해 일본에는 역사 교육이 무게 있이 다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예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그러는 편이 양국에 있어 득이다라는 반응이 많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이 답변은 30대 이상 일본들 사이에서 두드려졌으며, 덧붙여 요즘 신세대들은 한류의 영향과 표면적인 수준의 역사 교육 덕에 한국에 대해 우호적일 수 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한일 간의 역사적 인식 및 지식의 다양함을 알 수 있는 답변들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한일 양국이 역사적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있다는 사실 만큼은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뭇 한국에서는 일본인들을 보며 역사를 바라보려 하지 않는 몰염치한 인종이라 종종 언급하고는 하지만, 오히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 한국인들이 주장하는 사실과 같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사실 한국, 일본 할 것 없이 인성 좋은 사람은 있고 진정으로 몰염치하고 인면수심인 사람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양국의 복잡한 역사 문제가 그 보편적인 사실을 오히려 극단적인 확대해석을 하게했으며, 결국엔 서로에 대해 오해하게 된 건 아닌지 이번 인턴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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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서의 해외 인턴(일어일문학과 2년 김진형)

처음 일본 오사카의 해외 인턴 참가를 결심한 것은 군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학과 선배의 조언 이였다.

 

전역 후 알바를 하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던 중 인턴의 면접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알바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자고 생각하여 알바를 그만두고 일본어 공부를 하였다. 면접은 한국의 내 방에서 핸드폰 영상통화로 이루어 졌다. 미리 일본어 공부와 면접 예상 질문을 준비한 나로서는 그리 어려운 면접이 아니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일본어로 동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므로 일본어 능력을 우선시 했다. 면접은 당연히 일본어로 진행되었고 다행이도 면접 후반에 다다르며 웃음이 피어나는 면접이 되었다.

 

인턴 활동 신청 장소는 일본의 대기업중 하나인 한큐 한신 호텔즈이다. 일본의 전쟁 이후부터 한큐 호텔과 한신 호텔은 서로 라이벌 관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의 버블 경제이후, 한큐 호텔과 한신 호텔은 경영악화로 서로 통합하게 되고 현재의 한큐 한신 호텔즈라는 거대 기업이 탄생했다. 한큐 한신 이라는 기업은 오사카에 큰 규모의 지하철을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서 그 산하에 있는 한큐 한신도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일본은 현재 저출산 고령화 시대인 만큼 젊은 사람의 인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호텔의 특성상 일본인들(자국민)의 숙박은 물론 외국인(해외여행자)의 숙박도 많아, 영어, 중국어, 한국어 언어 구사 능력자들을 많이 채용한다.

 

처음 면접을 볼 때는 호텔의 카운터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지만 막상 인턴으로 들어가자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실망도 하고 일본에 인턴으로 왔는데 식당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며 후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나에게 있어서 매우 좋은 기회였다.

 

내가 처음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2학년으로 나는 실제로 꽤나 오랫동안 일본어를 공부해 왔다. 그래서 조금 자만도 하고 일본어로 회화 하는데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손님에게 말하는 말투는 가장 정중한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이때까지 얼마나 일본어 존경어 겸양어 공부를 안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손님에게 인사 하는 법부터 시작하여 요리 이름 요리 설명을 배우고 서빙하는 법 등등을 세세하게 배웠다.

 

처음 배우는 것이라 서투른 점도 많았고 실수한 경우도 많았지만 그 레스토랑은 예전부터 한국인 인턴을 받아서 운영해 왔던 레스토랑인 만큼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해주었다. 물론 사람인지라 짜증내는 동료, 화내는 동료도 있었지만, 군대에서 정신력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단련된 나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 해외 인턴의 경험은 일본의 사회생활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 이였다.

 

일본은 한국과 생활습관이 많이 닮아있다. 예전 일제 강점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까운 나라이기에 닮은 건지, 옛 중국과 교류가 있어, 닮아 있는 건지 자세히 모르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진 나라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인 만큼 차이점도 매우 많았다. 문제는 그 차이점이 생활의 조그마한 차이점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은 일본에서 가장 적응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그마한 차이점은 있어, 오히려 큰 오해를 낳는 경우가 발생한다. 인턴쉽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점,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 일이 큰 오해를 낳거나, 일본사람들에게는 이상하다고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인 동료들에게 재미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본은 한국과 취직관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일본에서의 취직은 한국과는 다르게 평생 직장의 취직 이였다. 내가 한번 취직을 하면 뼈를 묻는다는 생각을 가진 일본인은, 그 회사(직장)에 충성을 다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정해진 일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과 다른 나라들은 처음에 취직할 때 일을 받고 취직한다. 예를 들어 인사부에 취직 하던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취직 하던지 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내가 취직한 호텔도 처음에는 어디에 소속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의 멤버쉽만 주고 나중에 소속될 부서 장소를 알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이것은 비단 인턴쉽에 한하는 경우가 아닌 일본의 취직 성격이었다.

 

그에 따라 일본의 급여 방식도 달라지게 되는데, 일본의 급여 지급 방식은 일을 하는 정도와 어려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나이와 근무년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공무원과 매우 비슷한 급여 방식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근무년수가 낮아도 급여가 높아지는 이상한 급여 체계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 매우 놀라웠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아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확실히 한국인인 만큼 매운 음식이 매우 먹고 싶었다. 일본인은 매운 음식을 못 먹고, 안 먹는 습관이 있어서, 일본인의 매운 음식이란 한국인에게 있어서 살짝 매콤한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일본에 조금 있으니 매운 음식보다 일본의 음식에 익숙해 져, 역시 일본도 문화가 깊고 그 식문화에는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해외 인턴은 그저 외국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를 많이 느끼고 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인턴쉽 에서는 일본의 여러 곳을 여행해보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쉬웠지만, 일을 하면서 일본의 사회를 배웠다는 점에서 매우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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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현장학습 - 이우를 다녀와서(중문과 3년 전은지)

지난 1월 인문대 코어사업단에서 주최하는 프로그램 ‘국제무역현장학습’을 통해서 일주일 동안 중국 이우(义乌)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무역현장학습을 신청하기 전까지는 이우라는 도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우와 함께 절강성(浙江省)에 위치해 있는 온주(温州)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할 때 지명을 몇 번 들어본 것을 제외하고는 저에게 아주 생소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지원서를 작성하기 전에 간단하게 사전 조사를 하면서 이우가 어떤 도시인지에 대하여 알아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매 시장인 ‘푸텐 시장’이 존재하고 한국인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수많은 상인들이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국내 공산품의 약 70%가 이우 시장에서 도매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랬습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전 세계 상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우 시장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 곳에 가서 직접 보고 들으면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국제무역현장학습을 지원하게 되었고 운 좋게 기회를 얻어서 이우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우에서 지내는 일주일 동안 무역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시장조사도 하고, 현지 물류 창고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푸텐 시장에서 직접 시장조사를 했던 것입니다. 무역현장학습을 가기 전 자신들이 관심 있는 카테고리 안에서 다섯 가지 제품을 선정하여 국내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소매가 및 도매가를 조사하는 과제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우에서 그 과제를 바탕으로 관심 카테고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조를 이루어서 시장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관심 카테고리는 액세서리였고 저희 조는 액세서리 중에서 귀걸이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시장조사를 하기 전에 ‘최소주문량’, ‘도매가’와 같이 기본적으로 알아둬야 할 몇 가지 단어들을 배우고 바로 실전으로 나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가게 안에 들어가서 물어보는 것이 두려웠고 망설여져서 가게 근처를 서성이며 귀걸이를 구경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용기를 내어 말을 한두 마디씩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그 뒤로 문제없이 시장조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멘토님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희 스스로 해냈다는 사실이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구매하는 입장이었던 제가 시장조사를 통해서 ‘어떤 디자인의 제품이 많이 팔릴까?’, ‘이 제품은 얼마에 팔아야 적절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판매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푸텐 시장은 총 5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액세서리는 제1구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조는 시장조사를 하는 이틀 동안 한인회 사무실이 있는 4구역부터 1구역까지 직접 걸어가야 했는데 왕복 약 두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다리가 아팠던 만큼 푸텐 시장의 규모가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엄청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4구역과 1구역을 오고가는 과정에서 매우 다양한 제품군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푸텐 시장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이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왜 전 세계 상인들이 이곳으로 오려고 하는지 그 궁금증이 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우에서 일주일 동안 했던 활동들을 모두 다 적지는 못했지만 그 중 이우 한인 상인회 멘토님들께서 해주신 무역 강의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무역 전문 지식과 더불어 본인들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얻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4학년이 되는 저의 입장에서 앞으로의 진로 선택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국제무역현장학습은 저에게 있어서 단순한 무역 현장 학습이 아니라 견문을 넓힐 수 있게 해준 좋은 프로그램 이었습니다. 무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반드시 무역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권유하고 싶은 프로그램입니다.

 *사진: 2조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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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에서의 느낌(신문방송학과 4년 임소윤)

이우로 다녀온 무역현장학습은 사실 내가 관심 있던 콘텐츠무역과는 거리가 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그래도 같은 무역이라면, 또 콘텐츠무역에 있어서도 중국이 중요한 만큼 이번 현장학습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1년이 지나자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고 과연 내가 중국어로 실무를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두 번째 이유였다.

사실 강의 내용은 거의 실물무역에 관한 것이어서 콘텐츠무역과 관련해서 정보를 얻긴 힘들었지만 이번 현장학습에 참여해서 얻어간 것도 많다. 무역에 대해 무지했던 내가 새로운 분야에 대해 현지 종사자들에게 직접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의 경험담과 인생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이우시장과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치열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인간극장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 같았다고나할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만큼 열심히 살고 싶어지는 욕구가 생겼다. 한국에 돌아가면 빨리 계획했던 걸 실행해야겠다고 다짐하니 설렘과 기대감이 생겼다.

또 이우시장의 중국 상인들을 비롯해 이우에서 생활하면서 만난 중국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어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았다.(어법에 따라 정확하게 구사했다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서로 소통이 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중국어로 실무를 보기 위해서는 더 공부를 해야겠지만, 과연 나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중국어로 실무를 보는 직무에 지원해도 될까? 라고 더 이상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기대했던 현장학습과 100프로 일치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생각보다 얻어가는 것이 컸던 프로그램이었다. 무역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더더욱 얻어가는 것이 큰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많은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유익한 일주일을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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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 현장실습에서의 통역 경험(중문과 1년 장은경)

이번 국제무역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통해서 저의 통역에 대해 좀 더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품의 최소수량을 통해서 금액을 좀 더 적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예) 이 브로치 하나의 가격은 18원입니다. 최소수량은 120단입니다. 한 단에 12개 있습니다. 500단을 사면 이 브로치 한 개를 2원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사진>

이런 통역도 해 보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통역하는 동안 사람의 기분과 어떤 방식으로 해야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더 좋은 의사소통이 될 수 있을지 더 많은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이런 경험과 경력이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쌓일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참가 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안동환 교수님, 김태완 교수님 수고 많았습니다. 많은 추억과 경험이 좀 더 쌓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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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실무를 배운 7일간의 시간(중문과 3년 임청희)

참여수기를 쓰기에 앞서 해외현장학습에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이우 한인회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우에 머무는 7일간의 시간 동안 정말 도움을 많이 주셨고, 실제로 무역에 종사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실질적 무역실무를 배울 수 있었고, 중국에 사는 삶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간 무엇을 배울까? 설레기도 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공존해 있었습니다. 이우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무역에 관한 실무교육이 시작되고, 거대한 무역 시장인 국제상무성을 돌아다니니 가슴이 뛰고 실제 무역에 뛰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전에는 교육, 오후에는 현장에 다니면서 오전에 교육했던 것을 느끼고 실행한다는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중국 이우에 가기 전에 교수님께서 상품선정을 해오라고 하셨을 때 정말 당황을 많이 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현장에 가서 직접 보니 사전조사가 정말 필요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전조사를 한 사전조사제품에 대해 실제 무역업에 종사하시는 분께 알려드리고 직접 유사제품을 찾았을 때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고, 들떠있었습니다.

다음날 교육에는 관세나 부가세, 또 운임까지 계산에 보니 조금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회사에서 실제 사용하는 서식까지 내어주신 한인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이런 무역실무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생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 좋았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인회에서 시행하는 수업을 통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실질적 실무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중 FTA 및 물건에 대한 관세와 부가세, 운임 등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과 용어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전 수업뿐만 아니라 이우에 있는 실제 기업탐방을 하고 물건이 어떻게 이동이 되는지 알게 되어 무역에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하고 그 영역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참가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해 느꼈습니다. 앞으로 무역에 대해 알고 싶거나 배울 생각이 있다면 이우현장학습프로그램을 정말 정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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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현장학습 속 ‘깨달음’(중문과 3년 염지영)

첫날에는 이우시 박람회장을 방문하여 영상자료를 시청하고 큐레이터분의 설명을 들었다. 이우에 오기 전에 간략하게 조사했었지만, 직접 가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나니 이우시가 세계적인 일용품의 중심지로 경제적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도시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준비 과제를 토대로 하여 조를 나누었고, 멘토님과 함께 앞으로 시장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모임을 가졌다.

드디어 시장 조사를 직접 하기로 한 둘째 날이 되었고 매우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오전에 간단하게 무역이론과 시장조사에 대해서 멘토분들의 설명을 들었다. 생소한 단어지만 批发价(도매가), 起订量(최소 주문량), 付款条件(지급조건)과 같은 단어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첫 시장조사를 나섰다. 생각보다 이우에 있는 상점 주인들은 매우 친절했고 가격 네고를 할 때에도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나선 두 번째 시장조사에서도 어려움 없이 미팅을 진행할 수 있었고, 소매를 하는 상점에서 가격을 흥정하여 귀걸이를 사는 재미있는 경험도 하였다.

一打에 12개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대부분의 악세사리 최소 주문량은 一打라는 것도 시장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신기했던 점은 이우 악세사리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보게 된 많은 한국인분들이었다. 그 분들은 이우에서 귀걸이를 주문해서 한국에서 판매하는 것이었고 그분들이 가격 네고를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시장조사 외에도 담당자분들의 물류이론 및 실무나 아이템개발 및 제작 관련 교육도 매우 인상 깊었다. 이번 학기에 경영학부의 무역학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던 내용들을 직접 무역을 하고 계신 분들에게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역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입 절차, 결제 방법 및 신용장 그리고 인증 제도와 안전 확인 제도 등 복잡하지만 꼭 알아야할 것들에 대해서 배우면서 정말 유익한 무역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역 현장학습을 통해 느낀 점은 총 2가지다. 첫 번째는,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시장 조사를 하면서 많은 상점을 돌아다니는데 첫 상점에 들어가기까지가 굉장히 오래 걸렸다. 막상 들어가서 조사를 하려고 하니 발도 입도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무작정 들어가서 가격 네고를 하다 보니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만 내서 도전 한다면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는 중국 이우에 무역 현장학습을 하러 왔지만 삶의 지혜를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우 한인 상인회분들과 일주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그 분들의 삶의 굴곡 이야기를 들으며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앞으로의 나를 계획할 수 있는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국은 매우 넓고 기회의 땅이라는 말을 항상 문장으로만 보았다면, 이우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값진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이우한국상인회의 재정부 국장을 맡고 계신 최웅기 국장님의 말이 정말 인상 깊었다. 우리가 이우에 있는 6박 7일 동안 대박 상품을 알고 간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라고 하셨다. 무역 현장실습동안 무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하게 배워갈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더욱 더 단련시키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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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무역현장학습 참가수기(중문과 3년 박수진)

2018년 1월의 초반을 이우무역현장학습으로 보냈습니다. 올해로 4학년이 된 저에게는 의미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무역관련 수업, 책등을 보고 막연하게 글로만 접했던 무역에 대해서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습니다. 마침 시기적절하게 코어사업단에서 이우무역현장학습 참가자를 모집해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만 접했던 무역은 해상보험, 포워딩, 신용장 등등 복잡하고 어려워 심층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우에서 제가 직접 다양한 현장을 보고, 거래시뮬레이션도 하고, 현장에서 일하시는 멘토님들의 강연을 들어보니 7일간 점차적으로 무역이라는 것에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혼자서는 해보지 못할 많은 기회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무역상무성에서 상인들과의 거래진행과정, 물류회사의 업무과정, 무역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경험에서 나오는 강연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교환학생 이후에 처음으로 방문한 중국, 그중에서도 이우는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귀국하기 아쉬울 정도로 정이 많이 든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우에서 무역에 종사하시는 멘토님들 또한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저희를 위해 실무교육과 현장교육을 해주시고, 인생에 있어 필요한 많은 조언들을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프로그램은 여러 방면으로 정말 유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더 키울 수 있었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자극제로 남을 추억이 되었습니다.

방학을 이용해 해외를 방문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은 분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정말 유익한 시간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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义乌欢迎您 이우는 당신을 환영합니다! (중문3 박세윤)

2018년도 1월 3일부터 9일까지 이우시에서 진행된 국제무역현장학습 기간 동안 국제상무성에 위치한 이우한인회에서 일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첫 날에는 어색했던 이 공간이 떠날 때 쯤에는 꽤나 익숙해졌었다.

 첫 날 우리 조는 악세사리, 공예품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모였고, 우리 조의 멘토님은 구희완 부회장님께서 맡아주셨다. 조끼리 처음 모였을 때 이우에 온 이유와 목표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알차고 의미 있는 현장학습이 될 수 있도록 의기투합을 했다. 구희완 멘토님께서 ‘이우의 무역은 택배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국내 택배가 2-3일 만에 도착하는 것처럼 중국 이우에서 한국까지 고작 3일이면 물건이 도착한다고 한다. 국제 거래는 최소 몇 주부터 몇 달이 걸릴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신속함이었다.

교육시간마다 각자 본인의 사업을 하고 계시는 사장님들께서 실무에 쓰이는 지식들을 전달해주셨다. 그 중 FTA, 선적조건 등의 용어를 쉽게 설명해 주셨는데 나는 바로 전 학기에 무역학개론을 수강했던 터라, 배웠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할 수 있어서 내용이 반갑기도 했고, 배로 좋았다. 강사님들의 교육에는 본인들이 이우에서 직접 사업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나 인생의 지혜들이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낯선 타지에서 몇 십 년 동안 몸소 겪으며 터득한 지식은 책에서 배우는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셋째날과 넷째날에는 실무교육으로 국제상무성을 직접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두 명 세 명씩 조원과 짝이 되어 악세사리가 밀집돼 있는 1구를 조사 탐방했다. 시장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거대해서, 한인회 사무실에서 1구 악세사리 시장까지 걸어가는 데만 30~4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도착 후 멘토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매장에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악세사리를 발견하면 도매가, 납기일, 공장위치, 최소주문량 등을 파악하고, 허락을 받은 후 물건과 수첩에 위의 정보를 기록해 함께 사진으로 남겼다. 6~7가지의 품목의 시장조사를 끝내고 나서, 내가 언제 중국에서 가장 큰 도매시장에서 시장조사를 해보겠나! 하는 생각에 굉장히 벅차고 뿌듯했다. 실제로 내가 한국에 가져다 팔 물건을 찾겠다 라는 생각으로 조사에 임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기 상당히 어려웠다. 예쁘고 세련된 제품을 판매하려면 안목도 길러야함을 절감했다. 그리고 오다가다 이 넓은 시장에서 열심히 각자의 생업을 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태한 내 모습을 자연스레 반성하게 되었다.

교육 마지막날 수료증을 받기 전 각자의 소감을 나누면서, 함께 온 18명 모두 다 한층 성장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 앞으로 무역에 종사하지 않을지라도, 이우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무엇을 하든 매사에 최선을 다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삶의 자극제가 되었다.

이번 현장체험학습은 이우 국제상무성을 체험하기에는 너무도 짧지만 값진 시간이었다. 본인의 사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쁜 시간 내셔서 교육해주시고, 함께 해주신 한인회 멘토님들의 따뜻한 정에 재차 감사드리고 싶다. 특히 우리 조 구희완 멘토님께서 교육 당일 날 생일을 맞은 나를 위해 케이크를 선물해주시고, 모두 함께 축하해 주셔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 다음 기수가 이우를 방문하더라도, 이번처럼 밝고 따뜻하게 맞아주실 것이 분명하기에, 아직 이우 국제현장학습을 체험하지 않은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사진1- 시장조사를 하는 모습

*사진2- 수료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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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무역현장학습 참가수기(국제통상학전공 4년 손완주)

어렸을 적 중국은 나와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무역에 꿈을 가지고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영어만 잘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들께서 “내가 여러분 나이로 돌아간다면 중국어를 배웠을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나를 움직였다. 그래서 중문과를 복수전공 하게 되었고 학우들을 따라가기 위해 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어느 정도 괜찮은 실력을 갖췄다고 자만하고 있을 때 이우 무역 현장학습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이 프로그램은 딱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생각하고 신청했다.

 

나는 중국에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이우에 가기 전에 중국어 회화, 이우 사투리, 이우시장, 조사하고 싶은 물건 등등 많은 것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시장에서 흥정은커녕 내가 먹고 싶은 음식 하나 주문을 제대로 못하고 쩔쩔맸기 때문이다. 이우는 “닭의 깃털로 황금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동네가 아니었다. 한인회의 멘토님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오셨을지 감이 오질 않았다. 중국에 직접 부딪혀 본적이 없는 나는 중국인에게 말을 걸기도 무서웠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책속에서만 살던 내가 현실 생활로 나오니 자신감이 없어졌다. 그리고 자만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사실 나는 무역을 전공하고 중국어를 배워서 한국에서 편하게 회사 다니면서 천천히 배워가다가 퇴직하고 중국관련 내 사업을 해봐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멘토분들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 분들은 이우에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여 많은 것들을 일궈내신 분들이다. 이우에서 직접 흥정을 하고 공장은 어디인지 물류단가는 어떻게 해야 줄일 수 있는지 어떤 아이템을 선정해야 하는지 등등 무역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직접 책임지고 수행하시는 모습을 보고 크게 반성하게 되었다. 무역에 관한 수업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인생에 대한 말씀 하나 하나 모두가 다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특히 최웅기 국장님은 일본에서 공부하시다가 갑작스레 중국으로 오셔서 지금 8년째라고 하셨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데 오셔서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셨다고 한다. 이처럼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고 조언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마음에 와 닿았다. 내가 곧 창사에 가서 코트라 인턴생활을 한다고 하니 많이 걱정하시면서 춘절에 놀러오라고 하셨다. 다시 뵙게 되면 생각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다른 학생들에게 이 기회가 다음에도 있다면 꼭 다녀오라고 추천하고 싶다. 무역 분야에 관심이 없더라도 일주일만 시간을 내서 한 번 도전해본다면 오길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중문과가 전공이 아니라도 복수전공을 하고 있다고 해도 주눅 들지 말고 도전해 보길 바란다. 정말 인생은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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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역 현장학습 후기(중문과 3년 노지현)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절강성 이우시의 온도는 비교적 따뜻했다. 현장학습을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조사해본 이우시의 역사는 대단했다. 인구 68만 명의 작은 도시인 이우는 세계 잡화시장 30%를 차지하는 이우 시장을 만들어냈을 뿐더러 이러한 경쟁력을 불과 25년 만에 만들어냈다. 장사를 잘한다는 자부심과 열정이 있는 이우였기에 추운 겨울임에도 그 열기가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나는 국제 무역 현장학습이 나에게 어떤 길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원하였었다. 다행히 며칠 동안의 수업과 현장실습을 통해 전혀 무지했던 무역의 전반적인 이론을 배움과 동시에 중국이라는 나라 안에서는 또 어떤 방법으로 무역을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면서 미래에 이런 방향으로도 길을 걷는 나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한가지의 선택권을 더 얻었다.

 

참 좋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중국의 문화나 음식 그리고 중국어를 실전에서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이 7일 동안의 현장학습을 너무나도 짧게 느끼게 했다. 또한, 꼭 무역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오랫동안 일해오신 분들의 말들을 종합해보면서 IT 쪽과 관련된 가능성도 찾아볼 수 있었고, 중국에서 사업 중이신 학교 선배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 중국에서 무엇인가를 해나갈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게 되었었다.

 

현장학습의 내용뿐만 아니라 환경마저도 나를 깊은 감명에 빠지게 했는데 살면서 이렇게 좋은 호텔에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묵게 될 줄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으며, 제공해주는 이동수단, 음식 모두가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었었다. 나는 이제 현장학습에서 느꼈던 중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1년 동안 열심히 꿈을 위해 준비하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국제 무역 현장학습만큼은 꼭 참여하라고 추천을 넘어 강요하고 싶다. 2018년 아직 1월밖에 안 됐지만 이번 년 최고의 경험이었고,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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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푸톈시장에서의 무역실습(중문과 3년 박건희)

이우시의 푸톈시장은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컸고, 다양한 상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서 생활하시는 한인상회분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직접 무역실습을 했던 시간은 특히 개인적으로 재밌으면서도 느끼고 배운 점이 많았다. 내가 정말 한국에 소량으로 물품을 가지고 가서 온라인 마켓을 운영한다고 가정을 하고 실습을 해 보았다. 그래서 같이 다녀주신 다른 멘토님께도 여러 부분을 물어보며 실제로 내가 운영을 했을 때 드는 비용들과 현실적인 부분을 따져보기도 하면서 정말 쉽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

 

특히 무역과 관련된 교육시간은 새로운 개념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며, 무역이라는 분야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물류회사를 직접 방문하여 들었던 교육내용과 현장방문을 통한 학습효과는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중국으로 파견되어 생활하는 주재원의 실질적인 생활을 알 수 있었고, 주재원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실제 물류회사에서 컨테이너에 실린 물건을 보며 시각적으로 배웠던 모든 장면들이 정말 잊지 못할 순간들로 남을 것 같다.

 

하루하루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 순간 새로웠고, 즐거웠으며, 경이로웠다. 동시에 우리와 동행해주신 한인상회분들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앞으로 내 삶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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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깃털을 황금알로 바꿀 수 있다” 이우에서의 7일(중문1 이다하다)

지난 2018년 1월 3일부터 9일까지 이우시에 다녀왔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우시 무역 현장 학습”에 참가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고비는 신청서 양식을 받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계기와 예상 활동계획을 제출해야 했었는데, 무역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무역이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검색을 해보고 관련 직업군을 조사를 하고, 면접을 본 뒤 무역 현장 체험 학습에 발탁 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

 

이우시의 첫인상은 자그마하고 이제 개발되고 있는 소규모 도시였다. 예상외였다. “이우시에 없는 물건은 이 세상에 없다”라는 말이 나왔듯이 이우시도 상해만큼이나 엄청 발달된 도시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이 판단은 도매시장에 가자마자 금방 오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우시는 말 그대로 상인들을 위한 도시였다. 품목별로 나눠진 섹션 구역들이 있었으며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한 물품시장을 발로 뛰면서 돌기에도 벅찼다. 시장을 돌면서 “닭의 깃털을 황금알로 바꿀 수 있다”라는 이우시의 속담을 들었는데, 과연 평범한 도시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상인들의 도시 이우시니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역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서 몇 가지 악세사리들을 소규모로 판매하기 위해서 직접 구매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마냥 순탄하고 즐겁지만은 않았다. 에누리를 하다가 쫓겨나기도 했으며, 직접 돈을 쓰고 사는 과정이기에 수없이 고민을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과연 이 물건들이 한국에서 팔릴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다 공부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무역이라는 게, 별게 아니구나. 결국엔 다 장사이고, 내가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의 규모가 커지고 나라와 나라를 건너면 그게 무역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 처음에 무역현장체험을 신청할 때 무척 난감해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역”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하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 현장실습을 간다는 자체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나니 머리회전이 빨라졌다. 이우시에서의 무역 생활, 무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 나아가 나라면 이런 무역 일에서 어떤 분야를 도전할지 여러모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우시에서의 경험은 무역공부 그 이상의 값진 경험이 되었다. 그 7일 동안 가슴이 들끓었다. 아직 무언가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열심히 살아서 내 꿈을 쟁취해야겠다는 투쟁심.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판에 박힌 생활을 하면서 잊어버린 내 꿈이 되살아났다. 멘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늙는 게 두려운 이유는 도전할 나이가 지나가기 때문에 두려운 거예요.”

 

이 한마디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20대를 잘 보내고 있는가?

이우시에서 무역을 배웠다고 무역 일을 하겠다고 확정지은 건 아니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내 미래와 진로를 결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이우시. 정말 놀랍고 나에겐 꿈같은 도시였다. 너무 값진 경험과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 이우시에서 배운 더 넓고 환해진 시야를 가지고 내 진로의 길과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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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에서의 큰 경험(중문과 3년 김은영)

성큼 다가온 2018년 한해의 시작을 이우시 무역 현장학습으로 맞이했다. 평소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우 무역시장에 대해 아주 거대한 시장으로 기술하곤 했다. 수업시간에 접하게 되었던 슈퍼차이나를 통해서도 이우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크기이며 어떤 식으로 무역이 진행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번 이우 무역연수에 참여한 이유에도 또한 내 눈으로 직접 이우시장이 얼마나 큰지 확인해보자는 작은 호기심이 있었다.

이우 무역 현장학습은 주로 오전에 한인협회 사장님들의 무역 강의를 듣고 그것을 기본 바탕으로 오후에 직접 무역시장에 투입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하며 무역관련 서류를 정리하는 그 전에 있는 모든 일들을 직접 경험했다. 실제로 듣던 대로 어마어마하게 거대했던 이우시장에서 관심 있는 분야에 직접 시장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면서 어려웠다. 시장조사를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그 뒤 과정만을 중시하면서 공부했던 내가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절대 단순하고 쉽게 해결되는 일들은 없구나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무역이 정말 섬세한 부분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노력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다는 것이 조금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직접 이우 무역시장에서 시장조사를 하며 여러 나라 외국인들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우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곳인 것을 실감했다.

한인협회 사장님들이 직접 들려주셨던 조언들도 너무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 가장 가슴을 울렸던 것은 이우시장에서 살아온 이야기였다. 이우가 아무리 성공 가능성이 무한한 보물섬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누가 자신의 아이디어만을 믿고 뛰어 들어갈 수 있을까? 사장님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보물섬에 뛰어들어 10년 이상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셨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만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어 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대학생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다른 사람들이 파놓은 우물에 들어가고자 발버둥 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공무원, 평범한 회사원을 추구했지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사장님들의 조언을 따라 내 우물을 파려고 노력하고 싶다.

* 사진1: 팀 대표로 발표하는 모습

  사진2: 시장조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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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역 현장체험 참여 수기(중문과 1년 김자운)

저장성의 성도인 항저우에서 남쪽으로 100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우, 이곳은 경공업제품 생산 및 유통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규모로 중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소매상들이 몰려드는 장소입니다. 저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 무역에 대한 조금의 배경지식은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무역현장을 체험해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국제 무역 현장체험을 통해 이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무역의 실무적인 내용과 중국소상품의 중심이라는 위상을 가진 이우를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이우시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다양하고 수많은 물건들이 위치한 푸텐시장을 비롯해 이우한인회와 이우한인협동조합을 방문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루 동안 쉬지 않고 돌아도 끝나지 않는 엄청난 크기의 시장, 또 그곳에서 서로 힘을 모아 입지를 키워가고 계시는 이우한인회분들과 협동조합 분들의 모습을 보니 존경의 감정과 동시에 익숙한 곳에서조차 뚜렷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저의 모습들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우 속 많은 한인 멘토님들을 통해 앞으로의 구체적인 목표와 막연한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속해있던 1조의 멘토님이 강조하신 인생계획표를 통해 근시적인 미래부터 먼 미래까지 설계해 나가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또한 배울 수 있었습니다. 5일간의 프로그램이 너무 빨리 종료된 거 같아 아쉽기도 했지만 이우에서 얻은 지식과 삶을 살아가는 태도로 한 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전남대학교 코어산업단과 이우한인회분들, 교수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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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현장학습 참여수기(중문과 1년 김지민)

학교에서 가는 무역현장실습이 쉬운 줄로만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에 갔습니다. 하지만 현장 실습 과정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고 정말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무역현장실습은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현장에 직접 가서 경험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여러 수업 중에서 아이템 개발 및 제작 관련 교육을 해주신 심성운 님의 강의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한 가지를 보고 여러 가지 시각(눈)을 가져라’ ‘부딪혀 보고 두려워하지 마라(망설이지 마라)’ ‘처음에 완벽하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등 강의를 들으면서 나태했던 저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도하지 않은 채 마냥 시간만 보내왔던 점, 나의 것일 수도 있는데 아니라고만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았던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직은 부딪혀보고 무엇인가 도전해야 시기라는 점임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에 직접 시장에서 체험해본 실습은 매우 낯설고 두려웠었습니다. 중국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상태와 많은 물건에서 어떤 것을 조사할지도 매우 막막했었습니다. 하지만 수행해야 할 과제도 있고 여기에 와서 직접 못한다면 후회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고 굉장히 떨렸지만, 천천히 질문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떨린 마음이 풀려 이후에는 자신 있게 조사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중국어 실력을 느끼고 정말 어학 공부를 능숙하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하게 되었습니다.

무역현장실습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 정말 감사한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속한 1조를 담당해주신 황석구 멘토님의 마지막으로 1조에게 해주신 말씀이 중국에 다녀와서도 가장 생각이 납니다. ‘자기만의 삶의 시간표(목표)’에 대해 강조를 하셨는데 멘토님의 인생 경험과 함께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경제적인 부는 물론 개인적인 성취감도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멘토님의 말씀은 프로그램을 마치고 중국을 떠나 한국을 가기 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을 해주시게끔 해주셨습니다.

무역현장실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면서 어려움도 느끼고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기회가 있다면 중문과 친구들에게 꼭 추천할 것입니다. 제가 느꼈던 값진 경험을 다른 중문과 학생도 경험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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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시 현장체험학습 활동 수기(중문과 1년 김단비)

2018년을 시작함과 동시에 부푼 기대를 안고 이우시 현장학습에 참가했다. 그리고 이우시 현장학습을 기점으로 정말 많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인협회 멘토 선생님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나에게 정말 많은 용기가 되었다. 뭔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항상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들의 삶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줬다.

한국에서 이우 시장에 대해 조사할 때는 세계 최대 무역시장이라는 곳의 규모가 가늠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우시가 어떻게 최대 무역시장으로 성장한 것인지에 대한 단순한 궁금증만을 가지고 이우시로 향했다. 그곳에서 보고 느낀 이우 시장은 어떻게 20년 만에 이우시가 세계 최대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해줬다.

여러 강의를 들었고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역시 멘토 선생님들이 들려주신 경험담이었다.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이우시에 자리를 잡고 사업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의 조언은 미래 설계의 시작 단계에 서있는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실장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중 세상이 대기업 회사원, 공무원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경쟁이 심하지만 이우시에는 자신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직종은 많고 내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많았다. 편협한 사고를 하고 살았다는 것에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오갔다. 모든 선생님들은 쉽게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없었다고 하셨다. 많은 실패를 거쳤고 그 곤경을 이겨냈기에 현재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공부를 하고 또 당장 주어진 활동을 하면서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단기적인 일에 집중해서 살아왔다. 그 기간 동안 반성보다는 이 문제를 어서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강했다. 그랬기에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또 그 그것을 이뤄나가면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시간은 많이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우시에서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는 동안만큼은 반성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특히 현지인과 소통하면서 느낀 부족한 중국어 실력에 스스로가 많이 위축됐었다. 너무 안일하게 공부했다는 생각을 현장학습 기간 내내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수준을 알고 앞으로의 공부를 하는데 있어 많은 자극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하다.

다만 나는 무역 관련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 나는 기본 지식이 없었던 터라 이해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생기게 된다면 강의 주제에 대한 공부를 더 꼼꼼히 해가서 강의의 활용도를 높여야겠다.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일주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나는 정말 큰 자극제 한 방을 맞은듯한 느낌이다. 온전히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무엇보다 특별한 시간이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 현장체험학습을 하면서 느낀 수많은 감정과 생각 그리고 멘토 선생님의 조언은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있어 큰 용기를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이런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내가 받은 정말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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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 소감문(중문과 1년 최민지)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이우시와 푸텐시장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푸텐시장은 중국 내 소상품 거래의 70% 이상이 이루어지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이 적합한 곳이었다. 매일 치열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생동감 있는 이우시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 또한 그 치열한 거래의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 중국으로의 체험학습을 떠나게 되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교수님께서 각자의 관심 상품에 대한 오프라인 및 온라인 시장 조사를 과제로 내주셨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해 조사하면 푸텐시장에서 그 상품을 찾기 쉽고 단가 또한 비교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형’과 ‘완구’를 관심 상품으로 정하고 10가지 상품(물총, 인형, 스피닝토이 등)을 선정하여 조사했다.

그러나 인지도 있는 상품(브랜드가 있는 상품)을 선정한 것은 독이 되었다. 브랜드가 있는 상품은 수출 과정에서 판권에 대한 일정한 대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마진(순수익)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무역 과정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얼마나 시장 거래에 대해 무지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멘토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거래’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전에 준비한 상품조사 자료를 기반으로 시장 조사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직접 시장에서 상품조사를 해보았다.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는 생활 회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상인회 분들께서 제공해 주신 자료를 활용하여 ‘단가는 얼마인지’, ‘최소주문량은 얼마인지’, ‘CBM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 상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중국어로 소통하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러나 멘토 선생님과 선배의 시범을 보고 차근히 시도해 볼 수 있었고, 차츰 중국어로 상품조사를 하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이렇듯 지난 4박 5일간의 프로그램을 통해 오전에는 ‘무역’에 대해 멘토 선생님들의 경험을 예시로 이론적인 수업을 들었고, 오후에는 이론 수업을 기반으로 한 상품조사를 했다. 체계적인 상인회 분들의 도움으로 프로그램의 이름에 충실한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을 알차게 경험했다. 이 프로그램을 접하기 전에 나는 ‘무역’이 종합예술과 같아서 진입 장벽이 높은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종합예술과 같기 때문에 다양한 방면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지루하지 않은 학문임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 조의 멘토 선생님은 황석구 사장님 이셨다. 황석구 사장님께서는 프로그램 동안 시장조사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부터 차근히 설명해 주셨지만, 무엇보다 ‘삶의 시간표’에 대해 굉장히 강조하셨다. 지금까지 본인의 경험을 예시로 들면서 결국 삶의 시간표(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개인의 성공, 가정의 행복 더불어 경제적인 성공까지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렇듯 무역과 더불어 삶에 있어서도 말 그대로 ‘멘토’의 역할을 해주신 황석구 사장님을 비롯한 모든 이우 상인회 분들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무역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신청했던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을 통해 나는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었다. 무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시장조사 방법, 생활 및 무역 회화 그리고 삶에 대한 자세까지. 내년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다방면으로 학습할 수 있는 국제무역현장체험학습을 강력히 추천할 것이다. 기회의 땅 중국과 실용적 학문 무역에 대해 직접적으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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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국제무역현장학습(중문과 1년 임다희)

여기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비단 무역뿐만 아니라 모든 시각, 관점, 심지어는 인생까지도 말이다. 무역은 내가 단 한 번도 겪어보거나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에서의 학습은 안내판 같은 것이었다. 여기는 이런 길인데 와볼래?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이우한인회 멘토님들은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남들이 없는 물건, 남들이 안하는 틈새시장을 파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맥락과 우선순위를 파악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라는 것이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발품을 팔아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말까지 해주셨다. 이 말씀들은 좋은 무역의 가르침이 되겠지만 또한 좋은 인생조언 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더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결국 자신이 하던 대로만 하게 되어 변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씀처럼, 진정 내가 열정이 있다면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많이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갈 길의 계획표를 세우고 그것을 지키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내 갈 길을 가다보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내가 언제 어떻게 다른 길을 가게 될지 모르니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경험해보고, 시도해보는 것이 지금 나로서는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무역 현장 실습을 통해 나는 도매로 물건을 주문하는 방법을 배웠고 무역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체계를 잡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경험이다. 나는 배웠다는 것만으로 나중에 나아갈 방향에 도움이 많이 될 거라는 것을 느낀다. 여기서 먹고, 체험하고, 배우는 과정에 많은 감사를 느낀다. 멘토님들을 보고 나중에 커서도 무언가를 말해주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우의 시장은 너무나도 컸다. 세상은 이보다도 크다.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며 도전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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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국제무역현장학습 참가수기(중문과 1년 김은민)

세계적 무역도시로 성장하고 있는 이우(义乌)시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국제상무성에서, 세계 물류의 흐름을 보았다. 각 칸마다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며 ‘이우에 없으면 어디에도 없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평소 문구점,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모든 상품이 그곳에 있었다.

한인회에서 만난 멘토님을 통해 수많은 조언을 얻었다. 무역이나 장사에 대한 Tip과, 인생에 있어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정말 유익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분처럼 성공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한인회에 모여 무역실습에 대한 공부를 했다. 起订量과 같은 무역 용어와, 어떻게 무역이 이루어지는지 등을 배웠다. 과연 내가 이 무역현장실습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이 정보들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함을 느꼈다. 스물 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이런 중요한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임이 떠올라 행복했다.

무역 실습은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현장학습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이를 시도해 볼 일이 있었을까? 원숭이 인형으로 상품조사를 시작해서, LED풍선, 젠가 등 다양한 상품을 조사해 보았다. 단가와 CBM 등을 물으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자신감도 붙었다. 중국어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고취할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 할지 말지를 고민 중 이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당장 신청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만큼 나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었고, 내 가치관을 재정립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얻은 가르침대로, 항상 능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되새겼다. 좋은 교수님들과 이런 프로그램에 함께해 영광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반드시 참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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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영화사 그리고 여름 밤의 영화제(불문과 안진)

저는 인문대학 코어산업단의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통하여 프랑스어를 상용어로 쓰는 캐나다 퀘벡 주에 위치한 몬트리올에서 이번 여름방학(7,8월)을 보내고 왔습니다.

제가 근무한 회사는 시네 타피 루즈(Ciné tapis rouge)라는 영화회사로서, 주로 퀘벡영화(퀘벡 감독이 제작한 영화, 퀘벡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등)를 지원하고 홍보하는 일을 합니다. 회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회사였으며, 회사 직원들 모두 몬트리올 또는 프랑스 사람으로서 영화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를 배우는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제가 인턴기간 동안 주로 수행한 업무는 Ciné tapis rouge에서 주관하는 ‘시네 뷰’(Ciné Vue)라는 영화제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제는 몬트리올 근교의 작은 휴양지 마곡(Magog)에서 열렸으며, 퀘벡의 영화를 상영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약 일주일동안 열린 영화제입니다. 이 영화제가 열린 기간 동안 저는 회사 사람들과 Magog에서 합숙생활을 하며, 매일 밤 다양한 영화프로그램을 실시하였습니다. 7번의 밤 동안 매일 다른 장소, 다른 영화, 다른 테마로(Ciné pointe merry, Ciné playa, Ciné camping, Ciné spa, Ciné suisse, Ciné croissant, Ciné musique, Ciné personnalité, Ciné vino) 영화를 상영하였고,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제가 열리기 전에는 영화제를 홍보하기 위해 영화제가 열리는 Magog 근처의 식당, 호텔, 병원 등 편의시설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업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동안은 영화제의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리정돈, 질서유지 등 현장에서 직접 일하였습니다. 특히 매일 밤 열리는 영화제를 홍보하기 위해 회사 사람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영화제 팜플렛을 나눠주었는데 이 활동을 통해 프랑스어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프랑스어로 말을 걸며 영화제를 홍보하고 설명하는 것이 낯설고 망설여져 힘들었지만, 여러번 용기를 내어 시도하니 점차 자연스럽게 말을 걸 수 있었으며 언어에 대한 자신감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을 신청할 때는 마냥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두 달동안 낯선 외국에서, 게다가 여행이나 어학연수가 아닌 인턴 활동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언어로 인한 의사소통이었습니다. 대학생 3년 동안 프랑스어를 꾸준히 공부하였고, 작년 한 학기동안은 프랑스로 어학연수 또한 다녀 왔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을 하려니 여전히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절한 회사사람들과 홈스테이 가족들 그리고 몬트리올 사람들 덕분에 주눅들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프랑스어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므로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초반보다 확실히 향상된 언어 실력과 언어에 대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몬트리올에서 지내면서 한국과는 다른 몬트리올의 문화와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특히, 한국과는 많이 다른 식문화가 인상깊었습니다. 저는 몬트리올의 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두 달동안 많은 도움을 받고 친밀해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홈스테이 식구들을 위한 한식요리를 했는데, 이 경험을 통해 몬트리올 사람들의 한식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으며 서로 다른 식생활 문화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해외인턴이라는 흔치않고 쉽지않은 경험을 마치고 나니 앞으로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두 달이지만, 이 두 달은 저의 대학생활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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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메모리, 파리 (불문과 고은송)

파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온지 어느 덧 한 달이 되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에 가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해외는 언니와 함께 일본에 다녀온 게 전부인 나였기에 혼자 비행기를 12시간 타고 파리에 잘 도착할 수 있을지 부터가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출발 전 인터넷으로 정보를 잘 알아본 덕분에 아무 일 없이 파리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파리에 도착한 첫 날은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했기 때문에 바로 잠들었다. 둘째 날 아침 일찍 파리의 랜드마크 에펠탑을 보러 갔다. 내 눈으로 직접 본 에펠탑은 기대에 못 미쳤다. 날씨도 흐리고 녹슨 에펠탑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보고 나서 인턴으로 일할 곳인 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로 갔다. 문을 열어주시던 관장님의 인상이 푸근하고 좋아 낯선 곳에서 느낀 긴장감이 조금 사그라졌다. 인턴 첫 날은 하는 일(조형 예술 작품 전시를 주로 기획하며 콘서트, 영화 상영, 문학 낭독 및 토론 등 문화적 성격의 행사를 주관), 근무 시간(주 5일, 1일 7시간) 등을 이야기하며 그 곳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일할 곳은 비교적 깔끔했지만 거기서 키우는 고양이가 사람을 좋아해 내게 자주 다가왔고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에겐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내가 처음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이자 인턴 생활 동안 제일 기억에 남는 활동은 탱고 축제이다. 탱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탱고 축제를 준비하느라 피곤해있던 내게 어떤 한 분이 같이 춤을 출 수 있냐고 물었다. 탱고를 출 줄 모르는지라 거절을 했다. 미리 탱고를 배워놓지 않았던 게 아쉬웠다. 춤을 추진 못했지만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그 분위기가 낭만적이어서 가만히 보고 있는 걸로도 행복했다.

일하러 가는 날이 아닐 때는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녔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대성당 등 유명한 곳을 갔을 때는 관광객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여유로운 파리 특유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그걸 느끼기 위해 내가 찾아간 곳은 방브 벼룩시작이었다. 자신이 쓰던 물건을 팔려고 나온 사람들이 길가에 길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된 책, 주방용품, 악세사리, 옷 등이 있었고 물건을 파시는 분, 사러 오시는 분들 또한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셨다. 오래 된 물건을 더 값진 것으로 여기며 보물찾기 하듯 구경하는 파리 사람들의 모습, 맑은 하늘 아래 호객행위 대신 느긋하게 책을 읽으시는 할아버지를 보니 ‘내가 파리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파리 생활을 하면서 마냥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 공항 가는 길에 눈뜨고 소매치기를 당할 뻔 했다. 29인치 큰 캐리어를 끌고 등 뒤에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었다. 메트로 역 안에서 카드를 찾고 있는 중에 어떤 건장한 남자가 내 손에 있는 핸드폰을 뺏으려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느라 몸에 힘이 들어간 상태여서 뺏기지는 않았지만 눈이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는 그 남자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내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그러나 이 또한 핸드폰을 뺏기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고 마지막까지 항상 주의하라는 내게 주는 교훈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파리 생활은 나에게 행복을 주는 메모리로 남아있다. 바쁜 일상에 지칠 때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행복했던 그 때가 생각나 기분이 좋아진다. 붉게 물든 센 강 옆을 거닐던 그 때, 햇볕이 반사되어 금빛으로 보이던 에펠탑, 눈 마주치면 미소를 짓던 친절한 프랑스인들이 그리워진다. 파리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갈 동안 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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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Montreal) 그리고 마곡(Magog) (불문과 임수...

저는 운 좋게 코어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몬트리올(Montreal)이라는 도시의  영화단체에서 인턴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 단체는 몬트리올에서 시작하여 세계 여러 도시들과 캐나다 여러 도시들에서 자체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하여 퀘벡 영화와 영화인들을 알리고, 이를 통해 퀘벡의 문화를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세계 여러 도시들과의 영화 공유를 통해 문화까지 공유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를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제가 바라던 일을 하는 단체에서 근무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짧지만 유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몬트리올 도착 후, 숙소로 영화사 책임자이신 Vanessa가 직접 방문해주셨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Ciné Tapis Rouge에 대해 설명 해 주셨고, 앞으로 개최할 영화제 소개와 더불어 제가 하게 될 일들에 대해 자세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일주일에 2-3번씩 팀원들 모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는 프랑스어로 진행되고, 전문 용어들이 많이 사용되어 처음에는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팀원들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주어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홍보팀의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지역의 주변 업체나 단체들의 연락처를 알아보고 메일이나 전화번호를 알아보고 엑셀 파일로 정리하는 일을 제일 먼저 했습니다. 리스트를 정리한 후, 리스트를 기반으로 업체들과 연락하여 영화제를 홍보하고 홍보 프로그램지를 배부하는 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영화제는 몬트리올 근처의 휴양도시인 마곡(Magog)이라는 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제는 Magog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장소와 환경에 어울리는 퀘벡 영화들을 상영해주었습니다. 공원, 호수, 스파, 캠핑장, 대학교 캠퍼스 등 여러 장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영화제 일정 동안 모든 팀원들이 Magog의 한 숙소에서 다 같이 지내면서 함께 일했습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니 영화제 기간 동안 팀원들과 많은 정이 들었습니다. 영화제 당일에는 시내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티켓을 팔거나 영화 상영 준비를 하였으며, 영화가 끝난 후에는 영화감독들과 관객들과의 짧은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이 끝나고 나면 영화감독, 관계자들, 팀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영화나 여러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캠핑장에서 진행되었던 영화제가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Magog에 위치한 국립공원 안의 캠핑장에서 진행되었는데, 호수 바로 앞이었습니다. 밤이 되자 별도 많이 뜨고, 모닥불도 피었습니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함께 영화를 감상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영화제 기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프랑스어 실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특히 영화계, 문화계 전반의 사람들을 만나 같은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서 유익하고 새로웠던 경험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홈 쉐어를 하면서 일상 속에서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프랑스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숙소를 2번 옮겼는데, 마지막 숙소였던 곳은 몬트리올의 영화학교에서 시나리오를 가르치시는 교수님의 집에서 홈 쉐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그 분과 매일 저녁, 주말 몬트리올 곳곳을 다니고, 여러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한국 영화와 퀘벡 영화, 한국 문학과 프랑스 문학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문화적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코어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파견 학생 당시와는 다르게 색다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며, 좀 더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제가 좋아하는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를 공유하고 일 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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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다국적 벤처기업에서의 2017년의 여름 (불문과 임수연)

 

 안녕하세요. 저는 해외인턴프로그램에 지원하여 프랑스로 인턴십을 마치고 온 불어불문학과 임수연이라고 합니다. 해외 인턴십이라고 하면, 낯선 나라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직무를 보는 만큼 많은 학생들이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선뜻 지원하기에 망설이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처음 지원할 때 그런 부분들이 조금은 걱정이었는데요. 그런 학생들을 위해 저의 인턴십 경험을 나누어보고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남대학교 코어사업단에서 운영하는 2017 하계 해외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인턴십을 다녀왔습니다. 위의 프로그램은 인문대 학생들에게 해외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인턴십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영어권·불어권 등 총 5개 언어권에 대한 인턴십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에 선정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프랑스 내 인턴십을 할 기업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프랑스 내의 한인 사이트들을 주로 방문하여 인턴십 할 기업을 찾았습니다. 여러 기업이 있었지만, 조건에 부합하는 기업을 찾기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그중 한 곳이 조건과 부합하였고 그곳에 연락을 넣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메일로 보내드리고 화상채팅 통해 간단한 면접을 보았습니다. 면접은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진행이 되었으며, 간단한 자기소개와 언어능력, 원하는 분야와 임하는 각오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인턴십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 소개를 해드리자면, Help My Candidature라는 벤처기업으로 학생들의 성공적인 프랑스 유학을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입학서류 및 자기소개서 CV 등의 서류 번역 및 교정, 행정 처리 동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랑스와 아시아(한국, 중국 등) 기업들 사이에서 협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6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총 8주에 걸친 인턴십을 하고 왔습니다. 회사는 프랑스 10대학(Universite de Nanterre) 내 coworking center에 위치해 있었으며, 다른 벤처기업 사람들과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회사 특성상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어 회사 측과 상의 하에 주 5일 중 2일을 사무실로 출근하고, 3일을 자택근무를 하였습니다. 근무시간은 주 35시간으로 9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하였고, 초과 근무 없이 5시 정시가 되면 퇴근하였습니다. 저는 회사에서 한국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주된 업무는 프랑스 교육이나 생활, 행사 등을 주제로 매일 한 개의 글을 작성하여 회사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습니다. 매일 주제를 정하는 것이 힘들긴 하였지만, 포스팅 글 작성을 하면서 저 역시 몰랐던 정보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포스팅 한 글은 Wordpress, SEO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회사 홈페이지에 다시 기재하고 구글 검색엔진을 만드는 일을 하였는데, 처음 사용하는 프로그램들이었지만 회사 동료들이 자세히 알려주었고 계속 사용하다 보니 곧바로 손에 익어져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프랑스 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위해 회사에 연락해왔는데, 성공적인 미팅을 위해 한국 트렌드 분석 및 관련 시장조사를 하고 PPT나 엑셀, 차트 등으로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회사 규정 및 서비스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홈페이지에 기재, 프랑스 전 대사관과의 인터뷰 참여 진행, 홈페이지 및 SNS 관리, 제휴업체 교섭 등의 다양한 업무를 하였고, 인턴십 종료 직전에는 프랑스 대학 커리큘럼을 정리하여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카탈로그 작업을 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인턴십이 종료되었는데, 맡은 업무를 다 마무리 짓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이번 인턴십은 저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지, 어떤 부족한 점이 있는지 알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턴십 초반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지만, 회사 동료들이 많은 도움을 주어서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턴십을 지원하기 전에는 먼 타지에서의 인턴십에 대해 걱정과 부담감이 있었지만, 실제 기업에 들어가 다양한 업무를 보면서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중요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면서 책임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해외 인턴십 수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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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해외인턴 간단한 팁 소개(중문과 문정훈)

중국의 경우 핀테크가 굉장히 발전되어 현금이 거의 필요하지 않고 스마트폰 하나로 밥 주문, 공용자전거 이용, 기차표 예약 등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중국에 도착한다면 바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공상은행이나 건설은행 등 중국계좌를 개설해 휴대폰과 연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계좌 계설 시 여권을 꼭 챙겨 가야합니다. 그렇게 한 후에는 웨이신페이, 알리페이를 이용할 수 있고 Ofo, mobike 등 공용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공용자전거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 보증금을 제외한 이용요금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두 달 간 mobike를 이용하며 보증금을 제외하고 2위안 지불했습니다. 그리고 美团, 饿了么 등 어플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데 굉장히 편리하고 저렴합니다.

해외 인턴이라는 경험이 흔하지 않은 만큼 여러 경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회사 일 뿐만 아니라 시간을 내어 여행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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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역에 음악을 전하다-상하이 MG Playing에서의 인턴(중문과 ...

안녕하세요. 저는 중어중문학과 14학번 정다솜입니다. 저는 여름방학 기간 중 상해의 MG Playing이라는 배경음악회사에서 단기 인턴 생활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사실 처음에 회사이름을 들었을 때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고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출발 직전까지도 배경음악회사라는 것만 알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회사는 상해의 한인타운인 홍첸루에 위치해 있었고 저는 ‘상해두레마을’이라는 카페에서 집을 구해 떠났습니다.

도착 후 바로 다음 날 첫 출근을 시작했는데 저를 포함한 세명이 일하는 작은 소기업이었고 저는 음악 선곡이라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처음엔 음악만 선곡하는 줄 알았으나 부담이 되었던 이유는 제가 선곡한 음악이 중국에 진출한 티니위니, 스파오와 같은 이랜드 패션 자회사들의 중국대륙 전 지역에 위치한 수많은 매장에서 흘러 나오고, 파리바게트와 올리브영과 같은 중국으로 진출한 많은 한국기업들의 매장에서 역시 제가 선곡한 음악들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회사가 중국에 진출했을 때 중국 정서에 맞는 그리고 한류의 흐름에 맞는 적절한 음악을 선택하고 재생하는 것이 매장 매출과 분위기에 중요한 마케팅의 수단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음악에 대한 피드백이나 기술적 결함이 생겼을 때 보통 전화가 오는데 그 전화를 받으며 그 피드백을 해결하는 역할 역시 주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스파오 매장은 신나는 K-POP을 선호하는데 너무 잔잔하거나 혹은 팝송이 들어갈 경우 그 즉시 다시 선곡해 보내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화장품 매장이나 의류 매장에 들어가면 그 매장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노래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손님들이 더 즐겁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쇼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었고 마케팅이라는 부분이 얼만큼 중요한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하다면 간단하지만 그 무게 만큼은 절대 가볍지 않은 업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업무는 책임감 있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업무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사장님과 같이 일하는 팀장님 역시 정말 친절하시고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하셨기 때문에 현실의 회사생활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서 상해를 관광지를 돌아보며 잊지못할 좋은 추억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프로그램은 고민하고 있는 학우가 있다면 저는 꼭 한번 도전해보라고 말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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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갤러리 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 ...

 지난 여름방학(2017년 7월~8월)동안 프랑스 파리에서의 인턴 생활은 전시, 기획을 꿈꾸는 저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프랑스어가 주 전공인 저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문화와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한 프랑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이후 프랑스에서의 교환학생 기간 그리고 유럽 배낭여행 동안 저에게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접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지식과 깊은 공부 없이 작품만을 감상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낀 후에는 제2전공으로 미술대학의 이론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프랑스 미술은 물론 현대 미술의 메카인 런던으로 대표되는 영국 미술과 미국 미술과 같은 다양한 지역의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전통 회화나 조각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 미디어아트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공부를 하였습니다.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진로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데, 제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미술 전시 기획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이론적 부분과 함께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도중 학교 선배로부터 방학 기간 동안 해외에서 인턴쉽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인문대 인문역량강화사업단에서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평소부터 저는 주 전공인 프랑스어와 함께 미술 이론 공부를 접목시켜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은 바라던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맞춤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인턴을 한 곳은 파리 19구에 위치한 에스파스 데 자흐 상 프롱티에흐(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라는 이영순 관장님이 설립한 사설 갤러리입니다. 갤러리은 단순한 회화 전시를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선보이는 곳이었습니다.

 갤러리 운영을 위한 단순한 일에서부터 다음 전시를 기획하는 것까지 관장님께서는 미술 이론을 전공하는 저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많은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또한 근무 시간 이외에는 예술 구역인 파리 마레지구에 있는 다양한 갤러리들을 소개해주시며 방문도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번 인턴 과정을 통해 그동안 이론으로만 배웠던 전시 기획의 구체적 부분들의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작가와 갤러리가 처음 컨택하고 계약하는 과정은 물론 재정적인 부분까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번 인턴 기간 동안 경험한 일들은 향후 제가 꿈꾸는 일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8주 기간 동안의 인턴쉽 과정을 마치고 남은 방학 기간 동안에는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패기 구겐하임의 컬렉션,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까지 현대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여행까지 할 수 있어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인턴 과정을 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저에게 이번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의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은 정말 큰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짧은 기간 동안 이지만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불안하였던 미래에 조금 더 선명한 길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꿈꾸고 있던 일을 하는 경험이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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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NGO단체에서의 인턴(불문과 황혁)

제가 인턴으로 일한 곳은 예스 아카데미아(YES ACADEMIA)라는 프랑스 NGO단체입니다. 단체는 제3세계 국가에 프랑스 청년들을 파견하여 낯선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를 받아들이고 나아가 청년들이 국제시민의 일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입니다. 작년까지는 글로벌 포텐셜(Global Potential)이라는 미국 NGO와 협력하여 프로그램을 정하고 공동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현재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프랑스 본부를 포함 세네갈, 인도, 니카라과, 아이티까지 총 다섯 곳의 지부가 있습니다.

저는 인도 지부와 관련된 부서에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주로 프랑스 현지에서 인도 참가자들과 프랑스 참가자들을 관리했습니다. 또한 인도와 프랑스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정보를 수집해 관련 정보가 잘 통하지 않는 오지에 있는 참가자들에게 보냄으로써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의약품 관련 업무도 그 중 하나였는데 인도에서 부족한 의료물품을 프랑스에서 파악하여 보내는 일이였습니다. 인도 현지의 기후변화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맞서 대처하기 위한 정보수집의 업무도 있었습니다.

프랑스 학생들이 인턴의 대부분을 차지함에 따라 주요 업무는 프랑스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유럽의 여러 국가 특히 영국에서 온 인턴 학생들이 있는 관계로 영어도 사용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의 특성으로 인해 참가자들과의 대화 및 메일을 통한 연락은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공식적인 메일을 작성할 때나 공적인 자리에서 영어를 말하기 전에는 영어권 국가 인턴들의 도움을 받곤 했습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으며, 자유로운 사무실 분위기 덕분에 인턴 기간 동안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전체적으로 사무실 분위기는 구성원들이 서로 도와주는 것이 일상적이며, 국적에 관계없이 화목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식사나 다과를 같이 하면서 동료들과 정도 많이 쌓였습니다. 사실 이번 인턴의 성과 중 가장 큰 것이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친구들을 사귄 일입니다. 이전에 제가 경험했던 현지 언어연수 당시에는 매일 프랑스어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정작 프랑스 친구는 사귈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인턴 기간 가장 만족스러운 지점이 바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인턴을 함께 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도전적이며 진취적이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고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유로운 사무실 문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제 상급자인 사라씨는 인턴 기간 중 수시로 제 생활과 애로 사항을 확인했으며 그녀를 비롯하여 동료들과의 식사 등 잦은 만남을 위해 프랑스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인턴 기간이 끝났을 때 동료들이 환송회를 열어준 것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환송회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과자, 과일, 음료들을 준비해서 감동은 배가 되었고 동료들이 전해준 롤링페이퍼는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프랑스는 물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코포니(프랑스언어권) 지역에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국제 개발이나 다른 이들에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목표를 위해 먼저 프랑스어를 깊이 있게 공부하여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자 합니다. 관련해서 현재 프랑스어학기관인 알리앙스 프랑세즈는 물론 원어민 선생님과의 수업을 계획 중입니다. 저는 현재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상태입니다. 이번 학기에서 제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좀 더 나은 방향과 진로는 어떤 것인지 심사숙고하여 사회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걸음을 하려고 합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정보를 알아보고 직접 찾아야 하는 프로그램이며 마치 아직 발굴되지 않는 부분을 개척해 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부족한 언어 실력과 현지에 대한 작은 지식만으로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 엄청난 도전입니다. 해외인턴 프로그램의 장점이자 단점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판단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성장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깊은 고민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아직 경험이 없는 저와 같은 학생들로서는 많이 힘들 수 있지만 제대로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한다면 크게 발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체적으로 현지인들과 의사소통, 숙소 찾기 등 그리고 동료들과의 인간관계 구축의 과정 모두가 도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학과 수업에서 먼저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이 최선을 다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해외인턴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