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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서 은박지에 꼭꼭 눌러 쓴 김남주 시, 눈물이 난다"

전남대 인문대 7일 김남주 기념홀건립 추진위 출범식
반독재 투쟁 ‘전사 시인’…510편 중 360편이 ‘옥중시’
김남주 시인이 교도소에서 영어의 몸으로 있을 때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우유갑 안쪽면에 새긴 ‘다산이여 다산이여’라는 시. 전남대 제공
김남주 시인이 교도소에서 영어의 몸으로 있을 때 칫솔을 날카롭게 갈아 우유갑 안쪽면에 새긴 ‘다산이여 다산이여’라는 시. 전남대 제공
“편지 봉투만 한 크기의 은박지에 시가 꽉 차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김남주(1945~94) 시인(이하 김남주)은 ‘옥중시’로 유명하다. 후배 고형렬은 2014년 자전적 에세이 <등대와 뿔>에서 김남주가 옥중에서 은박지에 눌러 쓴 시 '단식'과 '일제히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 등 2편을 받아 간직하고 있다가 공개했다. 그는 당시 “칫솔을 부러뜨려 한쪽을 갈아서 날카롭게 만든 뒤 은박지에 눌러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시인은 때론 교도소에서 받은 화장지에 가슴 섬뜻한 시를 절절히 풀어 놓기도 했다.

 

김남주 시인이 교도소 화장지에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는 육필시. 전남대 제공
김남주 시인이 교도소 화장지에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는 육필시. 전남대 제공
김남주가 남긴 510편의 시 가운데 360편이 옥중에서 씌어진 것이다. “펜과 종이를 주지 않아 우유를 싼 은박지에 못을 갈아 썼거나 심만 구해 화장지에 어렵게 시를 적었다”고 한다. 면회를 온 사람들을 통해 어렵사리 밖으로 나왔다. “가족초청좌담회가 있던 날이다…형은 음식을 먹으면서 자꾸 주위를 흩어보곤 했다. 그러더니 교도관이 잠깐 자리를 비우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형은 허리춤에서 뭔가를 꺼내 재빨리 덜 먹은 밥 속에 쑤셔 넣었다. 얼마 후 <나의 칼 나의 피>라는 시집이 출간되었다.”(동생 김덕종)

 

‘저항시인’ 고 김남주. 전남대 제공
‘저항시인’ 고 김남주. 전남대 제공
그는 청년기의 절반 가량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19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종신집권을 위해 ‘유신’을 선포하자 친구 이강과 함께 지하신문을 낸다. <함성>이라는 유인물은 전국 최초의 반유신 투쟁 지하신문이었다. 1973년 이강이 제작해 김남주에게 보낸 <고발>이라는 이름의 지하신문이 중앙정보부 검열에 발각됐다. 이 사건으로 징역 2년형(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을 때까지 9개월동안 감옥에 갇혔다. 이듬해 고향인 전남 해남으로 낙향해 농사일을 거들면서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 등 8편의 시를 발표했다.

 

1979년 10월엔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됐다. 남민전 산하 ‘민투’에서 지하신문을 내는 등 ‘땅벌작업’을 했던 전위조직의 일환이었다. 당국은 남민전을 용공조작했고, 80여명이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김남주는 1,2심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로 이감됐다. 국내외의 지속적인 석방운동에 힘입어 1988년 12월 석방됐다. 구속된 지 9년 3개월만이었다.

 

1980년 5월2일 남민전 사건 관련자들이 서울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앞에서 두번째줄 오른쪽 첫번째가 김남주 시인. 전남대 재공
1980년 5월2일 남민전 사건 관련자들이 서울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앞에서 두번째줄 오른쪽 첫번째가 김남주 시인. 전남대 재공
그의 시는 불덩이였다. “감옥에서 쓴 시는 밖으로 흘러나와 봄이 와도 움츠리고 있는 자들의 채찍이 됐다. 그의 시는 시위대의 노랫말이 되기도 하고, 대학가의 ‘불온 유인물’이 되기도 했다.”(김삼웅) “선하고 착하며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던 김남주가 혁명적인 시를 쓰는 ‘전사시인’으로 변모했던 것은 군사독재의 포악성이 만들어 준 후천적 요인 때문이었다”고 한다.(박석무) 철창 밖으로 나온 시인은 49살이던 1994년 2월 췌장암으로 타계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교도소 안에서 동생에게 쓴 편지.
교도소 안에서 동생에게 쓴 편지.
하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다. 김남주의 시는 “언어의 명료성과 윤리적 성실성이 만나 이루어진, 우리 시사에서 만나기 힘든 희귀한 결정체“(김경윤)로 정서적 울림을 주고 있다. “내게 김남주라는 이름처럼 통렬한 거울은 없다. 그것은 늘, 그전의 모든 것이 무의미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서 철없이, 또다시 사회운동의 열정을 지피며 타올랐던 자아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김형수)

 

김남주(2010년 영문과 명예졸업)의 모교인 전남대(총장 정병석)는 7일 오후 4시 인문대학 1호관 113호에서 ‘김남주 기념홀 건립 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연다. 김남주 시인의 삶과 시 정신을 기리자는 의미가 담긴 프로젝트를 널리 알리기 위한 첫 걸음이다. 시인이 타계한 지 25돌이 되는 내년 2월, 전남대 인문대학 1호관(근대문화유산) 1층 113호 강의실에 김남주 기념홀(70평·231㎡)을 만들 방침이다. 사업비 8억원 중 3억원은 전남대가 마련한다. 추진위원회 쪽은 “전남대 총동창회, 전남대 민주동우회, 한국작가회의 등이 나서서 5억원을 모금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남주 시인의 시집.
김남주 시인의 시집.

 

김남주 시인의 시집.
김남주 시인의 시집.
“시인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들에게 먼 과거지사가 되었습니다만, 시인의 정신과 삶의 태도, 그리고 문학적 유산은 우리가 길이길이 보존할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에 시인의 생전에 가까이 지낸 모든 분들과 그 친구들, 시인을 기리고자 하는 모든 분들의 뜻을 모아 전남대학교 인문대학에 김남주 기념홀을 건립하여 시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합니다.”(김양현 추진위 집행위원장·전남대 인문대 학장) 문의(062)530-3100.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860800.html#csidx95a4154116065bbb970456b6d21d2e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