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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je t'aime!

Paris, je t'aime!

정치외교학과 12학번 김서영 (불어불문학과 부전공) 학생의 해외인턴(프랑스) 수기입니다.

 

  오른쪽에는 에펠탑, 왼쪽에는 노트르담 대성당. 거리의 화가와 음악가들. 나는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의 인턴이다.

  2017년의 시작과 함께 8주간의 인턴 활동이 시작되었다. 내가 인턴으로 속해있는 기관은 파리의 ‘국경 없는 예술공간(Espace des arts sans frontières)’이다. 한국인 관장님과 프랑스인 직원 한 명에 의해 관리운영되는 작은 규모지만, 매달 풍요로운 문화행사가 가득한 곳이다. 프랑스인과 한국인은 물론, 일본/중국/대만/아랍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아티스트들의 전시와 공연이 열린다. 국경을 초월한 이 공간의 공용어는 ‘예술’이다.

  인턴으로서의 업무는 굉장히 다양하다. 청소와 서류정리는 기본, 공연이 있는 날이면 객석을 마련하고 스낵바를 운영한다. ‘국경 없는 예술공간’을 소개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불어 문서들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한 번의 공연 또는 전시를 위해서는 많은 손길과 노동이 필요하다. 또, 문화공간 역시 하나의 ‘공간’이기에 행정적인 업무와 각종 서류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동안 나는 문화/예술계에서 일하기를 막연하게 꿈꿔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문화〮예술계의 일은 언제나 재미있고 즐거울 것이라는 환상도 있었다. 8주간의 인턴기간 내내, 전시와 공연으로 화려하게 채워지는 문화공간의 내면을 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문화/예술계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보충해야 할 역량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인턴 활동 중 가장 핵심적이며 기억에 남을 업무는 ‘레지던시(residency) 프로그램’ 보조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국경 없는 예술공간’에 함께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하는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예술가들에게 교류와 협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훌륭한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잠재력을 가진 예술가들의 작품이 탄생하고 있다니! 하얀 상자 같던 공간이 예술을 잉태한 포근한 자궁처럼 느껴졌다.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될 아티스트들이 공간의 에너지를 받아 좋은 작업을 하길 기대하며 작업실을 마련하고 일정을 기획했다. 아티스트들이 도착 한 후, 관광지와 거리가 있거나, 여행객 신분으로는 찾기 힘든 갤러리와 문화센터들을 함께 방문했다. 문화공간들을 찾아가는 일은 내겐 노동이라기 보단 경험이었다. 파리에는 세련된 부촌에도, 낙후된 빈민가에도 문화센터들이 구석구석 숨어있고, 시민들은 이곳에 언제든 방문하여 전시와 공연을 즐긴다. 많은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의 문화공간들은 전문가들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파리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느낌이다. 문화공간에 누구든 어려움 없이 방문하는 분위기가 부러웠다.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거리감을 줄이는 비결은 뭘까, 자문해보았다.

  프랑스인 큐레이터와 한국인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통역하는 일도 내 몫이다. 아티스트의 의도를 오해 없이 전달하고, 프로그램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하면서도 센스있는 통역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은 불어 실력이지만 함께 파견된 동료 인턴언니와 머리를 맞대어 의사소통을 도왔다. 아티스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

  이미 5개월의 어학연수 경험이 있었기에, 프랑스 문화에 적응하는 수고로움은 덜했다. 하지만 물론, 힘든 시간도 존재했다. 한국에서 미리 구해놓은 집이 생각보다 열악하여 금전적 손해를 보며 일주일 만에 이사를 하기도 했고, 무례한 아티스트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감정만 상한 채 계획이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주변의 도움과 격려가 큰 힘이 되었지만, 나름의 위기들을 감당해내는 건 스스로의 몫이었다. 이를 감당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숙하지 못했던 점을 나중에서야 발견하여 반성과 자책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위기와 대처, 반성과 자책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를 성장시킨 모든 순간들에 감사하다.

  수기를 쓰는 이 시점에서 나는 인턴활동의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 있다. 나는 여전히 해외 인턴 지원서를 제출하던 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졸업을 앞두고 점점 무거워지는 취업에 대한 부담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가던 찰나였다.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나라, 프랑스에서 나는 비로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꿈꿔왔던 분야의 세계를 직접 경험해보고, 내가 무엇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 자문하고, 때로는 갈등을 겪으며 나에게 주어진 캔버스를 채워나갔다. 나는 이번 경험으로 얻은 나의 색(color)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잃지 않기로 다짐했다. 조바심 갖지 않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전문성은 뒤따라온다. 파리에서 배우고 느낀 점들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단체에서 더욱 구체적인 경험을 쌓아보고 싶다. 앞으로도 여러 차례 방황하겠지만, 내가 무엇에 열정적인지 알게 된 이상, 결국 돌고 돌아 길을 찾아가겠지. 천금을 줘도 바꾸지 않을 찬란한 시간이었다.